기사/인터뷰

미성년 김연경 “언니들에 두턱 쏜다” | 2006/04/03

 

‘꼴찌탈출 우승’ 흥국생명 선수들 뒷담화

 

여자배구 흥국생명의 막내인 18살 김연경이 장난스럽게 툴툴 댄다. “우승축하 파티로 나이트클럽에 가도 미성년자라 못들어 가잖아요.” 그러자 팀의 최고참 구기란(29)이 슬쩍 끼어든다. “언니들 같은 보호자가 있으면 괜찮을 걸.” 듣고있던 진혜지(24) 황연주(20) 등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지난 2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도로공사를 누르고 2005~2006 여자프로배구 원년 정상에 오른 그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지난해만 해도 그들은 한숨을 내쉬는 날이 많았다. 우승은 커녕 최하위를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던 팀은 지난해에도 꼴찌였다.

 

세터 이영주는 “매번 지고 고개를 숙이며 체육관 밖을 나가는 게 제일 싫었다”고 떠올렸다. 센터 전민정(21)은 2003년 11월 여자배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마지막까지 호명받지 못한 선수였다. 전민정은 “그날 혼자 화장실에 가서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전민정은 결국 흥국생명에 연습생으로 들어왔다. 맏언니 구기란은 “키가 작아 고교졸업 동기생들 중 거의 막판에 실업팀에 뽑혔는데, 어쩌다보니 또래선수 중 나만 남았다”며 쑥스런 웃음을 지었다. 제주도 출신인 센터 진혜지는 “학교 때부터 1승도 잘 못했던 것 같다”며 얼굴을 붉혔다. 레프트 윤수현은 어깨부상으로 운동을 접으려다 다시 코트로 돌아왔다.

 

상대팀에 승리만 헌납하던 팀이 올해는 달라졌다. 지난해 신인 황연주와 올해 입단한 ‘무서운 신인’ 김연경의 좌우쌍포와 2점짜리 후위공격이 힘을 보태면서 정규리그 1위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흥국생명은 챔피언전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김연경의 활약을 앞세워 내친 김에 통합우승까지 차지했다. 구기란은 “하위권을 맴돌다 입단 11년차 만에 처음 우승했다”며 결국 눈물을 보였다. 세터 이영주는 “꼴찌를 하다가 이기는 맛을 아니까 정말 욕심이 나더라”며 실패가 또 다른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진혜지는 “우승이 믿기지 않는다”고도 했다.

 

10대인 김연경에게 최우수선수상 상금 500만원을 어떻게 쓸거냐고 묻자, “내가 받은거니까…”라고 뜸을 들이다 “언니들에게 두턱을 쏘겠다”고 얘기했다. 몸을 사리지않은 언니들의 수비가 없었으면 이런 큰 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다시 밝아지자 “(김)연경이는 자뻑공주” “(전)민정이는 아기돼지” “(얼짱)진혜지는 비호감”이라는 별명얘기가 스파이크보다 더 강한 속사포처럼 터져 나왔다.

 

한겨레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기사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