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인터뷰

한국 여자배구 에이스 - 흥국생명 김연경 | 2007/01/28

“모델 변정수를 닮았네.” “아니야 가수 비랑도 흡사한 분위기야.” “어라? 웃는 건 완전 ‘살인 미소’ 김재원이잖아?”

 

지난 18일 경기도 수지에 위치한 흥국생명 연수원. 배구팀 핑크스파이더스의 체육관이 자리한 그곳에서 여자 배구계의 ‘에이스 오브 에이스’로 꼽히는 김연경(19)을 만났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훈련 모습을 지켜보며 취재 기자와 사진 기자는 김연경이 누구와 닮았는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아는 연예인들의 이름을 열거하다가 막판에 <소문난 칠공주>에서 연하남으로 나온 박해진이 등장했을 때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변정수 외엔 모두 개성 있고 잘생긴 외모의 남자들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의견 일치를 봤기 때문이다.

 

중성적인 매력이 가득한 김연경은 지난해 데뷔한 프로 2년 차다. 데뷔하자마자 꼴찌팀이었던 흥국생명을 우승으로 이끌며 여자 배구의 ‘박주영’으로 불릴 만큼 인기와 실력면에서 거센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 시즌 MVP에다 신인왕 등 무려 5관왕에 오르며 상을 휩쓸다시피한 탓에 더 이상 올라 갈 곳이 없을 것 같은 김연경은 시즌 후 무릎 부상과 수술, 재활이라는 인고의 시간들을 보내며 호사다마의 전형을 보여줬었다. 그러나 질리도록 힘겨운 재활을 견뎌내고 올시즌, ‘2년차 징크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펄펄 날면서 득점과 공격 성공률 부문에서 1위에 오르는 등 팀을 선두로 이끌고 있다.

 

남자 배구에 이어 여자 배구까지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가운데 배구 팬들 사이에선 요즘 ‘김연경 때문에 여자 배구 볼 맛이 난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핑크색이 어울려

흥국생명 배구 팀 이름은 핑크스파이더스. 일명 ‘분홍거미’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핑크색이 난무한다. 여자 유니폼으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핑크색 유니폼을 입고 핑크색 츄리닝에 핑크색 구단 버스를 이용하는 바람에 선수들 얼굴도 온통 핑크빛으로 보인다.

 

보이시한 분위기의 김연경한테 핑크색은 좀 튀는 색깔. 그런데 의외로 김연경이 핑크색을 좋아한단다.

 

“제가 남자같이 보여도 알고 보면 여성스러운 부분이 많아요. 헤어스타일 변화에 거금을 투자할 만큼 신경도 많이 쓰고 예쁘고 귀여운 액세서리들을 좋아하거든요. 참 그리고 선배들한테 얼마나 애교를 잘 부리는데요. 네? 치마요? 에구 치마는 안 입어요. 헤헤.”

 

‘연남낭자’ ‘연사마’로 불리는 김연경이 치마를 입는다면? 상상만 해도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치마는 도저히 못 입겠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 아주 가끔 교복 입은 것을 제외하곤 츄리닝이나 청바지가 옷장을 가득 채운다고. 치마가 단 한 벌도 없다고 강조할 정도다.

 

외모가 무슨 상관?

인터뷰를 하던 중 여자 배구계의 최고 미인들에 대한 얘기로 화제를 옮겼다. 그러나 김연경은 배구 선수를 실력보다는 외모로 먼저 평가하는 기사들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 분들이 선수의 미모에 대한 집착이 너무 심하신 것 같아요. 여자 배구를 소개하는 기사에 대부분 ‘미녀 군단’ ‘미녀 3인방’ ‘미녀들의 대결’ 등 ‘미녀’란 단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해요. 남자 배구에선 ‘미남 대결’이란 말이 없잖아요. 왜 여자 배구만 유독 그런 단어를 써야 하는 거죠? 선수들 모두가 먼저 배구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을 거예요. 저 또한 마찬가지구요.”

 

어느 팀보다 외모가 뛰어난 선수들이 많은 흥국생명에서 김연경은 황연주 진혜지 등과 함께 트로이카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실력과 외모로 말이다. 김연경의 팬클럽이나 미니홈피 그리고 각종 포털사이트에는 김연경에 대한 인기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팬들이 찬사의 글을 올려놓았다. 독보적인 점프력과 가공할 만한 스파이크, 경기를 지배하는 플레이 등에 흠뻑 빠져버린 김연경 ‘폐인’들이다.

 

탈출의 추억

가출의 경험을 물었더니 바로 이미지 관리에 들어간다. 괜한 말 했다가 이상한 구설수에 오르기가 싫은 것이다. 그래서 선수들이 으레 시도하는 숙소 탈출기로 질문을 바꿔 대답을 유도했다.

 

“중3 때 단체로 도망간 적이 있었어요. 운동이 하기 싫어서죠 뭐. 단체로 도망다니면 겁이 안 나요. 어차피 혼나도 다 같이 혼나는 거니까요. 학교가 안산에 있었는데 처음으로 그런 일을 저지르다보니 경험이 없어서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안산의 후배 집 근처에서 놀았거든요. 그러나 7시간 만에 감독님한테 붙잡혀 다시 학교로 돌아갔어요.”

 

고1 때도 단체로 팀을 이탈해선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는데 첫 차가 순천행이었다고 한다. 그걸 타고 순천에 가서 꽤 오랫동안 숨어 지내다 또 다시 발각돼 코치한테 죽지 않을 만큼 맞은 기억도 있단다.

 

성장 과정

딸만 셋인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김연경은 큰 언니가 배구 선수로 활약했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자라며 자연스럽게 배구를 접한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팀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선수 생활로 접어들었다. 원래 공부에 관심이 없었고 노력해도 공부로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한 뒤론 배구에 ‘올인’했다.

 

그러나 배구를 시작할 때의 키(148cm)가 중학교 입학 후 고작 10cm밖에 자라지 않았다. 중학교 내내 그 키로 뛰다 보니 점차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작은 키 때문에 포지션도 세터를 맡았다. 친구들이 뛰는 모습을 지켜보며 말 못할 고통을 느낀 김연경은 당시 배구를 그만 둘 생각을 했다고 한다. 성장이 멈춘 상태에서 배구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원곡 중학교의 김동열 감독님이 절 많이 이끌어 주셨어요. 제가 손과 발이 큰 편인데 앞으로 키가 더 클 거라며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시더라구요. 포지션도 레프트, 라이트를 돌아가며 연습했어요. 비는 자리가 있을 때마다 즉시 투입되려면 멀티 플레이어가 되는 게 좋다는 조언 때문이었죠.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키가 쑥쑥 자라더라구요. 2년 만에 20cm가 자랐고 고3 초에 186cm가 됐죠. 지금도 조금씩 자라는 것 같아요.”

 

손과 신발 사이즈도 엄청 나다(정확한 발 사이즈를 밝히지 말아 달라는 김연경의 부탁으로 수치는 공개하지 않겠다. 대신 남자의 평균 발 사이즈보다 훨씬 더 크다^^). 이젠 오히려 키가 너무 클까 걱정할 지경이란다.

 

부상의 시련

2006년 5월, 김연경은 오른 무릎 수술을 받았다. 배구를 시작한 이래 처음 당한 부상이라 수술도 당연히 처음이었다. 무릎과 어깨, 발바닥 등에 잔병들이 늘 끊이지 않았지만 수술까지 하는 심한 부상을 처음 경험하다 보니 재활하는 6개월여의 시간들이 괴로워서 미칠 정도로 힘들었고 부대꼈다고 한다.

 

“재활이 예상보다 많이 더디게 진행됐어요. 시즌은 다가오는데 몸이 너무 늦게 회복되어 가니까 조급해지더라구요. 작년에 평범한 선수였다면 부담이 덜했을 거예요. 신인 선수가 5관왕까지 차지했으니까 올 시즌에는 저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백 배, 천 배는 더 많아졌거든요. 장난 아니었어요. 너무 압박감이 심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어요. 죽기 살기로 발버둥친 끝에 코트에 서긴 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점프를 못하겠더라구요. 통증은 없었지만 무의식적으로 신경을 쓴 거예요. 그러다보니 도하 아시안게임 때 제 역할을 못했어요.”

 

아시안게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김연경은 착잡한 심정으로 시즌을 맞이했다. 팀의 분위기 메이커이자 공격의 최선봉에 선 탓에 자신이 몰락하면 팀 성적에 영향을 미칠 게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을 발휘한 끝에 김연경은 현재 득점과 공격 성공률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2년차 징크스’란 말이 도통 어울리지 않을 정도다.

 

“배구 선수로 좀 유명해지긴 했나 봐요. 저한테도 ‘악플’이 생기더라구요. 내용이요? 글쎄 제가 담배를 핀대요. 선배들 권유에 못 이겨서…. 그래서 경기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글도 읽어 봤어요. 정말 심하더라구요. 술은 좀 마시는 편이거든요. 하지만 담배는 입에도 댄 적이 없어요. 인터넷이 무섭고 싫어요. 사람 이상하게 만드는 거 정말 순식간이대요.”

 

2년 연속 MVP에 도전하고 싶다는 김연경은 팀 용병 케이티 윌킨스와 단어 나열만으로도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인터뷰 말미에 김연경과 ‘시시콜콜한 인터뷰’란 주제로 Q&A를 주고받았는데 김연경은 세상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남자로 축구 선수 박지성을 꼽았다. 박지성처럼 매력적인 남자를 본 적이 없다는 것. 보기만 해도 기분 좋고 유쾌해지는 선수가 바로 ‘나이스 걸’ 김연경이었다.

 

일요신문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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