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인터뷰

여자배구 거물 김연경, '재미있는 배구' 열정, 이젠 즐길만큼 컸죠 | 2008/01/06

'꼬맹이 교체멤버'에서 여자배구 거물로

 

 

행복이란 향수와 같아서 먼저 자신에게 뿌리지 않고는 다른 사람에게 향기를 발할 수 없다”.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 레프트 김연경(20)의 미니홈피에 쓰여져 있는 문구다. 인터뷰에 앞서 사전 조사를 위해 찾아간 미니홈피에서 예상 외로 발견한 낭만적인 글귀에 순간 ‘잘못 찾아왔나?’라고 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김연경이 워낙에 짧은 머리에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많이 보여주는 바람에 ‘보이시’한 이미지가 선입견으로 굳어진 탓이다. 머리 속에 있던 선입견을 싹 지우고 만난 김연경은 하얗고 고운 피부에 붙임성 넘치는 평범한 스무 살 아가씨였다.

 

▲자연스러운 것이 좋아요

 

“화장이요? 방금 전까지 낮잠 자다가, 부랴부랴 세수만 하고 내려왔는걸요”. 오전 운동과 점심식사를 마친 선수들은 오후 3시 30분부터 시작되는 팀 훈련 전까지 휴식을 취한다. 잠으로 체력을 비축하기 때문에 인터뷰를 위해 자고 있던 김연경을 부득이하게 미리 깨웠다.

 

잠시 뒤 간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타난 김연경. 예상 외로 하얗고 고운 얼굴에 입술은 마치 옅은 핑크빛 립스틱을 바른 듯 빛났다. ‘인터뷰 때문에 화장이라도 했느냐’고 묻자 얼른 손사래를 친다. “배구가 실내운동이잖아요. 피부가 탈 일이 없죠. 평소에도 화장은 잘 안해요. 나갈 일이 있으면 기초 화장 정도? 색조화장은 일 년에 한 두 번 할까말까 하죠”

 

김연경은 “배구 하나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복잡하고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고 한다. 화장도 그런 이유로 잘 안 한다. 자연스럽고 편한 것이 제일 좋단다. 이성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남자친구는 없어요. 그런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 같아요”. 김연경이 밝힌 이상형은 키 185㎝ 정도에 마르고 유머있는 남자. 딱 꼬집어 말하자면, 배우 조인성과 정일우가 이상형이다. “요즘에는 정일우가 더 좋아졌어요”라던 그녀는 대뜸 “기자님이 만남 좀 주선해주세요. 공동 인터뷰 하면 좋잖아요. 정일우 연락처 모르세요?”라며 소녀처럼 눈을 빛냈다.

 

▲전화위복이 키운 거물

 

여자 배구 최고의 거물로 자리매김한 김연경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키가 너무 작아 자칫하면 배구를 포기할 수도 있었기 때문. “중학교 3학년 때까지 170㎝가 안 됐어요. 그래서 중학교 3년 내내 교체멤버였죠. 주로 리베로로 나서서 수비만 했어요. 세터도 가끔 했고요”. 어린 마음에 배구를 그만 둘까하고도 생각했었다.

 

“그만 하려고 하는데,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말리시는 거에요. 그런데 그 이유가 조금 특이했어요”. 손발이 워낙 크기 때문에 키도 곧 자랄 것이라는 게 만류의 이유였다. 김연경의 발 크기는 무려 290㎜, 웬만한 남자보다 크다. 손도 마찬가지. 손발이 커서 충분히 더 클 수 있다는 말에 김연경은 다시 마음을 돌렸다. 다행히 고교 진학 후 키가 쑥쑥 자라 팀의 주전 레프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교 시절 벤치멤버였던 게 다행이어요. 덜 뛰면서 그만큼 몸을 아낄 수 있었으니까요”. 전화위복을 통해 ‘거물’ 김연경은 탄생했다.

 

 

▲프로 3년차, 거물이 진화하다

 

김연경의 목표는 ‘재미있는 배구’를 하는 것이다. 프로 3년차인 김연경은 “공격적이고 화끈한 배구를 하면 보는 재미도 커지잖아요”. ‘재미있는 배구’를 목표로 하면서 김연경은 이번 시즌 배구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고 있다. “몸 상태는 데뷔할 때가 더 좋았죠. 그 땐 부상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시즌에는 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계속 경기를 치르면서 흐름을 알았다고 할까? 확실히 이전 두 시즌에 비해 시야도 넓어지고, 조급함이 사라졌죠”.

 

김연경의 몸 상태는 확실히 데뷔 시즌에 비해 좋지 않다. 첫 시즌을 마친 뒤 2006년 5월 오른쪽 무릎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고, 2007년 5월에는 왼쪽 무릎 연골판 파열로 두 번째 수술을 받았다. 오른쪽 어깨도 좋지 않아 연습 때도 온 몸에 테이핑과 압박 붕대를 감아야 한다. 하지만, 이른바 ‘구력’이라고 하는 경기감각은 향상됐다. 황연주 흥국생명 감독은 “이제는 조금씩 노련미가 묻어난다. 경기를 읽고 스스로 템포를 조절하는 방법을 아는 것 같다”며 김연경의 진화를 확인했다.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가 하는 일(배구)에 확신을 가진 김연경. 자신의 미니홈피에 적은 글처럼 그에게서는 ‘행복’의 향기가 묻어났다.

 

(용인=스포츠월드)

글 이원만 기자, 사진 김용학 기자 wman@sportsworld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