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인터뷰

'배구여제' 김연경 "대표팀서 용병 대우…올림픽 메달 기대해" | 2012/06/13

 

2011~2012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 MVP, 최다득점상 석권. 정규리그 무패 우승 주역. 올림픽 예선 득점 1위….'

 

얼핏 보면 '축구 천재' 리오넬 메시의 기록으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메시도 이 모든 걸 유럽 무대 입성 첫 해 만에 이뤄내진 못했다. 기록만 보면 비록 종목이 달라도 그 위상만큼은 메시에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다. 한국이 낳은 '배구여제'이자 '여자 배구계의 메시'라 불리는 김연경(24·페네르바체 유니버셜)의 이야기다.

 

올해 한국 스포츠계는 새로운 '월드 스타'의 탄생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과 일본 무대를 차례로 평정하고 홀연히 터키로 떠난 김연경은 이적 첫 해부터 유럽 무대를 평정하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장 빛나는 별로 떠올랐다. 시즌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곧바로 태극 마크를 가슴에 품고 올림픽 예선 무대를 누볐다. 여자 배구대표팀은 세르비아, 일본 등 강호들을 제치고 2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으로 8년 만에 본선행에 성공했다. 득점, 공격성공률, 리시브 1위에 오른 김연경의 맹활약이 없었다면 결코 쉽지 않았을 도전이다.

 

<더팩트>은 지난 5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대표팀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김연경을 만났다. 1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는 시종일관 활기찼다. 지난 시즌 기적 같은 맹활약을 펼쳤던 그의 가장 큰 수확은 바로 자신감이었다. 김연경은 어깨까지 내려왔던 머리도 짧게 쳐내고 36년 만의 메달 획득을 향해 당찬 각오를 다졌다. 배구장 한 켠에 붙어있던 '승리는 가장 끈기 있는 자에게 간다'는 문구처럼, 그의 시선은 오직 '런던에서의 승리'에 맞춰져 있었다.

 

 

◆ "유럽 무대 3관왕, 나도 믿기지 않아…새 팀은 아직 고민 중"

 

- 지난 1월 전화 인터뷰에서 새해 소망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MVP를 얘기했었다. 그런데 그 말이 기적처럼 현실로 이뤄졌다.

그때 통화는 기억하고 있다.(웃음) 처음엔 이렇게까지 될 줄은 생각을 못했다. 적응만 잘하면 경기는 뛸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MVP를 받고 나서는 동료들한테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워낙 세계적인 선수들이 많았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도 있어서 '내가 받아도 되는 상인가'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기분이 좋다.

 

- 이적 첫 해 목표가 주전 확보 아니었나. 정말 믿기 힘든 만화 같은 일이 일어났다.

솔직히 나 또한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챔피언스리그에 처음 나서게 됐는데 우승을 하고, 거기에 MVP까지 받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이라는 것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이제야 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 하지만 소속팀 페네르바체의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이 좌절됐다. 감독과 동료들도 속속 팀을 떠나고 있는데?

아마 소속팀 잔류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챔피언스리그에 못 나간다는 것 때문에 우선 순위에서 약간 배제하고 있다. 만약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땄다면 50% 이상으로 페네르바체 잔류를 많이 생각했을 것이다. 팀에서도 그만큼 날 원했고, 나 또한 운동이나 생활에서 만족하고 있었다. 힘든 건 있었지만 터키에서는 그 팀이 정말 괜찮았고 팬도 가장 많았다.

 

- 제의를 받은 팀만 6개 구단이 넘는다고 알고 있다. 어느 쪽으로 마음이 쏠리나?

최근엔 해외 언론에서 이적 확정 기사가 올라와서 기자들로부터 전화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아직 계약을 하진 않았다. 연봉을 많이 제시한 아제르바이잔 리그는 최근 많이 뜨고 있고, 선수들도 많이 가고 있는 곳이다. 다만 아제르바이잔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잘 적응을 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배울 점은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제르바이잔 뿐만 아니라 터키 리그 잔류도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 이적할 팀의 가장 중요한 조건을 꼽는다면?

우선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있는 팀이다. 그리고 내가 가서 우승할 수 있는 팀. 그리고 배울 만한 좋은 선수가 있는 팀에 가고 싶다. 지금은 제의를 받은 팀 중에서 최고의 클럽, 내가 가서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을 고르고 있다. 아직까지 결정은 못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페네르바체도 터키 리그에서 늘 우승하던 팀인데, 챔피언스리그 첫 우승을 하다 보니 터키 리그에서 우승 못해도 별 신경을 안 쓰더라.(웃음) 그래도 어느 정도 전력이 좋은 팀에 가고 싶다.

 

- 매년 팀을 옮기면서 느끼는 피로감이나 적응 면에서 힘든 점도 많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유럽으로 간다는 것 자체를 놓고 괜찮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먼저 많이 다가갔다. 나름대로 장난도 치고 했는데 유럽은 선수들끼리 기싸움이 있더라. 싸울 때 일방적으로 나한테 뭐라고 하더라. 난 그런 것에 내가 접고 들어가지 않았다. 나도 한번씩 똑같이 화를 내기 시작하니 선수들도 날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보게 되더라. 처음에는 기싸움으로 힘들었는데 나중엔 적응이 많이 됐다. 이제는 친한 선수들 집에도 초대받고 밥도 함께 한다. 유럽 선수들이 집에 초대한다는 건 정말 친한 거다.(웃음)

 

 

◆ "대표팀서 '용병'이라 불려…올림픽 메달 기대해달라"

 

- 8년 만에 올림픽 본선행 티켓을 땄다. 특히 예선 2위라는 호성적을 거둬 대표팀 분위기가 좋을 것 같은데?

다들 예선을 치르고 나서 자신감이 많이 붙은 것 같다. 난 정말 긴장을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예선 때 정말 많이 떨었다. 출발하기 전날엔 '잘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긴장된 마음이 처음으로 앞섰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결과가 잘 나와 선수들이 정말 좋아하고 있다. 이제는 올림픽 메달까지도 다들 생각하고 있다.

 

- 올림픽 메달권 진입은 배구 역사상 단 한 번 뿐이었다. 솔직히 자신은 있나?

자신 없다.(웃음) 농담이고, 사실 없다고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자신 있다고 얘길 해야 하겠는데 정말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도 다들 정말 이번에 해보자는 마음으로 힘을 내고 있다. 팬들이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다.

 

- 오랜만에 한국 선수들과 맞춰보는 호흡도 느낌이 색다를 것 같다.

오랜만에 베테랑 언니들이랑 같이 뛰어보니 재밌게 배구를 하는 것 같다. 언니들이 잘해주고 많이 도와줘서 마냥 좋다. (MVP 받고 나서 대우가 달라지진 않았나) 해외 진출했을 때부터 대단하단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이번에 MVP를 받고 나서는 더 그런다. 몇몇은 '우리 팀의 용병'이라고까지 한다.(웃음) 그런 식으로 말하니 웃기면서도 조금은 부담이 된다.

 

- 본선에서 우승후보 미국과 브라질, 중국을 비롯해 세르비아, 터키와 한 조가 됐다. 쉽지 않을 듯 한데, 어떻게 전망하나?

6개 팀 중에 2승을 해야 8강에 올라간다. 내 생각으로는 3승 정도 거둬서 조 4위가 아닌 3위로 올라갔으면 좋겠다. 그래야 8강에서 다른 조 2,3위랑 만나서 4강까지도 노려볼 수 있다. 메달을 따려면 준결승까지는 올라가야 하지 않겠나. (3승의 제물로는 어느 팀을 꼽겠나) 터키와 세르비아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빅3인 브라질이나 미국, 중국 중 한 팀은 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예선에서는 8년 간 이어진 일본전 22연패를 원정에서 끊었다. 기분이 어땠나?

국가대표로 뛰면서 처음으로 일본을 이긴 경기였다. 그것도 정말 중요한 시점에서 이겼기 때문에 좀 더 뜻깊은 승리였다. 그날 밤은 크게 파티를 열고 싶은 마음까지 들 정도로 좋았다.(웃음) 선수들도 그날을 기념일처럼 여겼다. 내가 봤을 때 솔직히 우리는 그 전에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기량은 일본이나 우리나 비슷했다. 다만 일본 원정경기가 많았기 때문에 분위기에서 조금 뒤졌다고 생각한다. 그걸 이겨내고 이번에 좋은 경기를 했던 것 같다.

 

- 일본과 세르비아의 최종전에서는 승부조작설이 일었다. 본선 진출에 아쉽게 실패한 태국 선수들과 친하게 지낸 걸로 알고 있는데?

일본-세르비아 경기 하기 전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장난 섞어 '분명히 일본이 풀세트를 가서 2-3으로 지고 세르비아와 함께 올라갈 것 같다'고 은연중에 말했다. 그리고 경기를 봤는데 정말로 5세트까지 가더라. 말한 대로 결과가 나와 의아했는데, 우리만 이상하게 생각한 게 아니더라. 배구팬들 사이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FIVB에서도 그쪽으로 알아보고 있다고 이야기를 들으니 놀라웠다. (FIVB는 조사 후 일본 대표팀의 져주기 논란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 역사상 첫 올림픽 본선 진출을 놓친 태국 선수들의 슬픔은 더욱 컸을 것 같다. 선수들도 울고, 현장에 있는 기자들까지도 울었다.

나중에 태국 선수들이 이야기하기에는 우리가 세르비아를 이겼다면 자기네가 무조건 올라가는 거였다고 농담식으로 말하더라. 괜히 미안했다.(웃음) 아시아 3팀이 다 올라갈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안타까웠다.

 

- 일본에서 뛴 적이 있는데, 일본 선수들보다 태국 선수들이 더 친한 건가?

물론 일본 선수들도 친하다. 하지만 그쪽 선수들이 경기 전에는 상대 선수와 친한 척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단장이나 코칭스태프로부터 듣는 것 같다. 유독 한국한테는 더 그런 것 같다. 난 그런 걸 신경쓰지 않아서 그래도 경기가 끝나고 나서는 편하게 이야기 한다.(웃음) 일본 배구는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좋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나 또한 많이 배우고 왔다. 일본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한국인이다 보니 가끔 얄미울 때도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웃음)

 

 

◆ "반짝 스타는 NO…'한국의 김연경' 오래 알릴 것"

 

- 배구여제, 여자 배구계의 메시, 배구 얼짱 등 다양한 수식어가 생겼다. 어떤 게 가장 맘에 드나?

(별명을 다 듣더니 웃음을 터뜨리며) 그렇게 많나? 난 정말 다 맘에 든다. 굳이 꼽자면 얼짱도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웃음) 모두 좋은 말이니까 아무거나 괜찮다. (메시는 신장 차 때문에 무리일 수 있겠다) 하긴…. 그렇긴 하다.(웃음)

 

- 유럽 무대 입성 첫 해 만에 많은 걸 이뤘다. 남은 목표는?

일단 올림픽 메달이 목표다. 프로 생활에서는 이적 첫 해 반짝 떠서 MVP까지 받았는데, 아직 1년으로는 사람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김연경이라는 선수가 있다는 것을 좀 더 많이 보여주고 싶다. 한국에도 이런 선수가 있다는 것도 많이 알려서 한국 무대에서 뛰는 많은 선수들이 해외에서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다. 그게 내 목표이자 앞으로 짊어져야 할 내 짐인 것 같다.

 

- 자신의 올해 활약을 점수로 매긴다면?

90점이다. 10점은 올림픽 끝나고 나서 채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올해 정말 뜻 깊은 한 해를 보냈기에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 언제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나.

딱 절반쯤 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더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마음은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은데 몸이 좀 아프다. 그래도 30살까지는 할 수 있지 않을까.(웃음)

 

◆ <더팩트>은 스포츠 전문 웹진 'PlayGround'를 통해 6월1일부터 6일까지 김연경에 대한 팬들의 다양한 의견을 받았다. 아래는 팬들의 질문.

 

- 유럽 생활 중 경기 외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반면에 가장 보람있었을 때는? (kes1954)

한국 들어온지가 오래 되서 잊어버렸다.(웃음) 아무래도 혼자 생활해서 느끼는 외로움이 크다. 언어 문제도 힘들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 그 순간 다른 것들에 집중하면 안 좋은 생각들을 잊어버린다. 보람 있었을 때는 MVP 받을 때보다 챔피언스리그 우승했을 때다. 정말 뜻 깊고 영광스러웠다.

 

-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은 어떤 걸 즐겨 보나? (honeyplum)

'드림하이'는 다 다운 받아서 가서 재밌게 봤다. 예능 프로그램은 '런닝맨', 'K팝스타', '위대한 탄생' 등 많이 봤다. 최근에 '런닝맨'에 박지성 선수가 나온 것도 봤다. (예능 출연 의사 있나) 재밌을 것 같다. 촬영이 너무 길면 힘들긴 하겠지만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예능 감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웃음)

 

- 매년 승승장구 하고 있다. 혹시 개인적인 징크스가 있는지 궁금하다. (tgtaxi)

징크스는 없다. 굳이 노력했기 보다는 알아서 없어졌다. 선수들은 누구나 징크스가 있다. 이겼을 때 이 바지를 입고 뛴다면, 다음 경기에도 무조건 이 바지를 입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번쯤은 무조건 하게 돼 있다. 그러나 시합을 하다 보면 언젠간 지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징크스가 매번 바뀌다 보니 맞는 게 하나도 없더라. 그 이후로부터는 전혀 신경을 안 쓴다.(웃음)

 

 

더팩트

글 유성현 기자, 사진 배정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