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한국 배구도 글로벌해져야 강해진다" | 2012/03/30
여자배구는 한국 스포츠사에 있어 특별한 종목이다. 1976년 몬트리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올렸다. 한국 구기 종목 중, 올림픽에 출전해 처음으로 메달을 획득한 이들은 여자배구 선수들이었다.
또한, 80년대는 현대-미도파로 양분된 라이벌 구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90년대부터 2000년 초반까지는 '숙적' 일본을 내리 연파하며 자존심을 세웠다.
그러나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이후, 한국 여자배구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일본 1진 팀에 연전연패하며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연경(24, 터키 페네르바체)의 존재는 한국 여자배구에 '한줄기 빛'과 같다. 김연경은 한국 여자배구의 역사를 새롭게 써가고 있다. 현재 최고의 선수들이 몰리고 있는 터키리그에 진출한 그는 유럽 리그 최고의 대회인 유럽배구연맹(CEV) 여자배구 챔피언스리그를 정복했다.
김연경의 소속팀인 페네르바체는 지난 25일(한국시간) 아제르바이잔 바쿠 헤이다알리에프컴플렉스서 열린 2011~2012 CEV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프랑스의 RC 칸느를 3-0(25-14, 25-22, 25-20)으로 완파하며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김연경은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에 등극하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터키리그 진출 1년 만에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섰다.
득점왕과 MVP 트로피를 동시에 움켜쥔 김연경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러 가지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유럽리그에서 체험한 선진 배구에 대한 소감과 한국 여자배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펼쳤다.
세계 최고? 걸어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
우승을 차지한 페네르바체 선수들과 김연경은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할 때, 깜짝 놀랐다. 공항 밖에 3,000여명의 환영인파가 몰렸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축제 분위기에 취해있던 선수들은 홈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들떠있던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우리 팀의 스텝들이 이러한 광경은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구경하기 힘들다고 말해줬어요. 이러한 환영 인파는 축구 같은 종목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실제로 체험을 하니 믿기지 않았어요. 아제르바이잔은 우리에게는 적지나 다름없는데 페네르바체를 응원해주시는 서포터스들이 현장까지 직접 찾아와 응원을 해주셔서 더욱 힘이 났습니다."
터키리그에 진출한 뒤, 김연경이 가장 힘들어했던 점은 ‘체력’이었다. 유럽 각국을 돌아다니며 경기를 펼쳐야했기 때문에 비행기 이동거리가 길었다. 국내리그나 일본에서는 이런 장거리 이동을 경험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워낙 이동거리가 길어서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저희 트레이너들이 체계적으로 관리해줘서 체력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총 4명의 트레이너들이 함께 다니는데 전부 분야가 달라요. 선수들의 컨디션을 관리해주시는 분이 한 분 계셨고 두 분은 치료와 재활 쪽을 담당했습니다. 나머지 한 명은 마사지를 전담하시죠."
페네르바체는 챔피언스리그의 유력한 우승후보였다. 김연경을 비롯해 세계적인 올라운드 플레이어인 류보브 소콜로바(35, 러시아)와 로건 톰(31, 미국)이 버티고 있다. 여기에 속공의 달인인 파비아나(브라질)와 터키를 대표하는 세터인 나즈 아이데미르(22, 터키) 등이 주전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터키리그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많아서 배울 점이 많았어요. 한국과 일본에서는 수비에 중심을 두는 배구가 주류였는데 이곳은 공격도 강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수비와 서브리시브도 탄탄했습니다. 특히, 구단의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음에 들었어요. 선수들이 오직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시스템 때문에 저도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김연경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공격력도 뛰어나지만 서브리시브와 수비 등 기본기가 뛰어나다. 여기에 상대의 허점을 이용하는 두뇌플레이도 능하다. 세계적인 리그에서 뛸 수 있을 만큼 완성된 선수였지만 최고의 올라운드 플레이어들과 함께 경험을 쌓으면서 더욱 진화했다.
"소콜로바는 저에게 공격 타이밍을 어떻게 잡아야하는지에 대해 많이 얘기해줬습니다. 또한, 워낙 경험이 많은 선수라 멘탈적인 부분에서 배울 점이 많았어요."
페네르바체의 야전사령관인 주전 세터 나즈는 22세의 어린 선수다. 처음에는 김연경과 호흡을 맞추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간의 신뢰감은 더욱 두터워졌다. 나즈는 실력도 뛰어나지만 빼어난 외모로 국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나즈와는 처음에 서로간의 기 싸움이 있었습니다.(웃음) 유럽 선수들은 모두 자존심이 강해서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나즈도 마찬가지였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친해졌죠. 저를 정말 많이 챙겨줬고 자기 집으로 데려가 함께 식사도 하면서 친분을 쌓였어요. 나즈는 지금 실력도 뛰어나지만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장래성도 매우 밝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즈가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것은 저도 알고 있어요.(웃음)"
나즈는 중요한 고비처가 오면 어김없이 볼을 김연경에게 올렸다. 이 부분에 대해 김연경은 "나를 믿어주고 볼을 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연경은 이번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은 물론, 득점왕과 MVP까지 차지했다. 팀 동료들은 김연경에게 "네가 MVP가 될 것"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결국, 챔피언스리그 MVP는 김연경에게 돌아갔고 '유럽리그 최고의 선수'에 등극했다.
"세계 최고라는 말은 실감이 나지 않아요. 제가 아닌 다른 선수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터키리그에 진출해 챔피언스리그 MVP를 받은 것은 개인적인 영광이기도 하지만 한국을 널리 알린 점도 너무나 뿌듯했어요. 저를 통해 한국배구를 보는 시선이 좋아진 점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꿈은 이뤘다. 이루고 싶은 또 하나의 꿈은 올림픽 출전
오늘 날의 김연경을 완성한 것은 타고난 재능과 눈물겨운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김연경이 가지고 있는 배구에 대한 ‘열정’이다. 김연경은 자신 개인만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한국배구의 발전을 누구보다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한국 여자배구가 더욱 발전하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국제대회의 좋은 성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활약하면서 느낀 점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곳에 계신 지도자들과 선수들은 정말 엄청나게 공부를 많이 해요.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늘 생각을 하죠."
일본리그에서 두 시즌동안 활약한 김연경은 터키리그를 관전하러온 일본 배구 관계자를 만났다. 일본여자배구대표팀의 감독인 마나베 마스요시 감독은 선진 배구를 공부하기위해 터키 리그를 직접 관전했다.
"제가 일본리그에 있을 때, 알고 지냈던 코치 분이 터키 리그를 구경하러 오셨어요. 그 분에게 '왜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세요'라고 여쭤봤죠. 그랬더니 그 분은 '이렇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씀했어요. 세계 배구의 흐름을 읽고 더욱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더욱 우수한 배구를 펼치는 것은 이기기 위해서다. 그러나 보는 이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이유도 있다. 김연경은 "터키에서 뛰면서 정말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웠다. 한국 배구도 지금보다 발전하려면 새로운 흐름을 보고 배우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페네르바체는 자국 정규리그와 컵 대회를 남겨놓고 있다. 여기에서도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치는 것이 김연경의 목표다.
또한, 버릴 수 없는 꿈이 있다. 바로 오는 7월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하계올림픽에 반드시 출전하는 것이다. 세계여자배구 예선전은 오는 5월19일부터 27일까지 일본에서 진행된다.
"터키에 있지만 고국에 있는 선수들과 자주 연락하면서 올림픽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어요. 모두 런던에 가야한다는 의지가 강합니다. 이번에는 최강의 멤버들이 모두 들어올 것 같은데 서로 합심해서 부디 좋은 결과를 얻고 싶어요. 모두 열심히 준비할 테니 크게 걱정은 안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웃음)"
엑스포츠뉴스 조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