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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그녀 손에 코트가 춤춘다 | 2005/11/02

1m88 큰 키로 한뼘 높은 스파이크… 우승 제조기
조혜정 이을 차세대 거포… “세계선수권 우승목표”


“한국 여자배구 사상 최고의 왼쪽 공격수 재목이다.”(류화석 현대건설 감독)
“앞으로 10년은 한국 배구를 이끌어갈 것이다.”(흥국생명 황현주 감독)

 

1988년 2월생(生), 17세의 나이에 이런 평가를 받는 선수가 누굴까? 여자 프로배구팀 흥국생명의 신인 김연경이다. 내년 2월 한일전산여고를 졸업하는 김연경은 1주일 전, 드래프트를 통해 흥국생명에 입단했고 현재 2005~06 V리그 시범경기에 뛰고 있다.

 

해맑은 얼굴로 아직 여고생 티를 벗지 못한 김연경은 이달 중순 일본에서 열리는 그랜드챔피언십에 출전할 한국대표에 뽑혔다. 김형실 국가대표팀 감독은 김민지(GS칼텍스), 한송이(한국도로공사)와 함께 왼쪽 공격수로 투입할 계획이다. 김화복 대한배구협회 총무이사 등 고교 때 국가대표가 된 선수는 꽤 있었지만, 곧바로 주전이 됐던 경우는 드물다.

 

“경험도 부족하고, 청소년대회와 성인대회는 다를 텐데 지나친 것 아니냐”고 여러 감독들에게 물어봤다. 공격, 블로킹, 수비 등 모든 부문에서 단연 돋보여 전혀 무리가 없다는 게 공통된 대답이었다. 김형실 감독은 “조혜정, 이은경, 지정희 등 거포(巨砲)의 계보를 이을 선수”라고 했다.

 

김연경의 키는 1m88. 역대 왼쪽 공격수 중 최장신이다. 안산 원곡중 3학년 때까지는 같은 학년 선수 중 가장 작았던 키(1m65)가 한일전산여고 입학 뒤 쑥쑥 자랐다. 고1 때 1m71, 고2 때 1m83. 얼마나 더 클지는 알 수 없다. 중학교 때까지 배구를 했던 큰언니(혜경·22)가 1m84, 엄마와 둘째 언니도 1m75를 웃돈다.

 

황현주 감독은 “러닝 점프 높이가 2m60이 넘어 상대 블로킹 위에서 공을 때릴 수 있다”며 “국제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이라고 했다. 백어택(후위공격)은 기본이고 스파이크 서브도 수준급이다.

 

지난달 31일 현대건설과의 시범경기에서 백어택 10개 중 4개를 상대팀 코트에 꽂아 넣으며 혼자 19득점 했다. 황 감독은 “중학교 때부터 지켜봤는데, 나도 깜짝 놀랄 만큼 발전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김연경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서 체중을 4㎏쯤 더 늘려야 한다”고 했다. 수줍게 체중(69㎏)을 밝히면서 “내 키에 그 정도면 마른 거예요”라고 토를 달았다. 많이 먹는데도 살이 찌지 않는다고 한다. 밥 두 그릇은 기본이고, 배가 고플 때는 세 그릇도 먹는다. 좋아하는 통닭은 한 마리를 해치울 때도 있다.

 

안산서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 손을 잡고 큰언니가 하는 배구 경기를 보러다니다가 아예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아버지 김동길(49)씨는 “야단도 많이 맞으면서 힘들어했는데, 잘 버텨냈다”고 했다. 3년간 그를 가르친 김동열 원곡중 감독은 “원래는 키가 작았는데, 욕심이 많아 연습을 열심히 했고 그래서 기본기가 탄탄해졌다”고 전했다.

 

‘연습할 때는 악착같이 하고, 쉴 때는 완전히 놀자’는 게 김연경의 신조. 김연경은 3학년이던 2002년 좌우 공격수로 번갈아 뛰며 김수지(현대건설)와 함께 팀을 4관왕에 올려 놓았다. 한일전산여고에서는 3년간 9차례 우승을 하고, 작년과 올해 청소년대표로 아시아선수권과 세계선수권에 출전했다.

 

차해원 한일전산여고 감독은 “쾌활하고 적극적인 성격 덕분에 큰 부상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연경은 올해 청소년세계선수권 때 주장을 맡아 팀을 이끌었다.

 

취미는 잠자기와 음악감상.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한다. 싸이월드 홈페이지도 있다. 포부를 물었더니 “우리나라가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한 적 없죠?”라고 되물었다. 그러곤 내년 세계선수권,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우승하고 싶다고 했다. 정말 겁 없는 선수다.

 

 

(천안=스포츠조선)

홍헌표 기자 bowler1@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