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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공격수 김연경의 인기와 짐 | 2017/07/31

그랑프리 여자배구 2그룹 결승

체력 저하로 우승 문턱서 좌절

상대 선수도 사진 찍자고 요청

교민들, 독일 등에서 원정 응원

“재정지원 부족해 2년간 출전 못해

후배들 큰 대회 경험 못해 아쉬워”

 

 

31일(한국시각) 한국과 폴란드의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 2그룹 결승 직전, 체코대표팀의 아네타 하빌리코바가 경기를 준비하는 김연경(29·중국 상하이)에게 잠시 다가갔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김연경과 사진을 찍었다. 김연경의 전 소속팀 터키 페네르바체에서 1년간 같이 뛴 동료였다. 아네타는 기자와 만나 “같은 팀에서 본 김연경은 놀라운 선수였다. 강력한 스파이크, 안정된 리시브 등 공수 모두 세계적인 선수”라고 칭찬했다.

 

이 대회 결승전과 시상식까지 끝난 직후, 김연경은 코트를 바로 빠져나가지 못했다. 사진을 같이 찍자는 독일 등 다른 팀 선수와 코칭스태프의 요청 탓이었다. 이 대회 한 관계자는 포스터를 가져와 김연경에게 사인을 받기도 했다.

 

경기장 밖에선 한국 팬들과 마주해야 했다. 경기가 열린 체코 북동쪽 오스트라바에서 500~600㎞ 떨어진 독일에서 아이들과 온 교민, 오스트리아 여행 도중 온 학생, 체코 교민 등이 선수단 버스로 향하는 김연경을 기다렸다. ‘김연경 효과’ 덕인지 이날 한국 응원단 규모와 함성은 오스트라바에서 불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폴란드에서 온 응원단에 밀리지 않았다.

 

 

당연히 김연경은 코트에서 더 바쁜 몸이었다. 간판 공격수인데다, 후배들을 아우르며 경기를 치러야 하는 주장까지 맡았다. 이날 결승전에서 김연경이 스파이크 등 공격을 시도한 횟수는 양 팀 최다인 35회(득점 15점)였다. 한국 공격은 김연경의 ‘오른 팔’에 쏠렸다.

 

여자배구 대표팀 홍성진 감독은 “김연경이 많이 힘들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여자배구 세계 1인자라 상대의 적극 방어를 뚫어야 하고, 팀의 기둥으로 경기장에서 후배들도 다독여야 한다”고 말했다. 11년 전, 국내 여자 프로배구 정규리그 최우수선수·신인상을 동시에 석권하며 ‘대형 신인’의 등장을 알린 그는 이제 199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선수로 세대교체 중인 대표팀의 고참이 됐다.

 

한국 대표팀은 결승에서 체력 저하로 장신 폴란드에 막혀 우승컵을 들지 못했다. 2014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인 1그룹에서 뛴 한국 여자배구는 배구협회 재정난으로 그랑프리 출전을 2년간 포기하면서 2그룹으로 떨어졌다. 2그룹 소속으로 그랑프리에 재출전한 한국은 예선 1위(8승1패)로 결선에 올랐지만, 정작 예선 리그에서 두 차례 모두 이긴 폴란드를 결승에서 꺾지 못했다.

 

한국은 부상 선수 등이 겹쳐 14명 엔트리를 채우지 못하고 12명 만으로 4주간의 경기 일정을 소화했다. 홍 감독은 “체력 소모가 커서 선수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12명만 와서 바꿔줄 선수도 너무 없었다”고 했다. 특히 세터들의 안정적인 공 배급을 기본으로 한 조직 플레이가 과제로 남았다. 대표팀은 주전 세터 김사니 등의 은퇴 이후 주전 세터를 고르는 중이다. 홍 감독은 “유럽·남미 팀들의 블로킹 높이가 높기 때문에 평범한 공격으로는 안된다. 세터의 (공 배급) 높이와 파워가 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자배구는 이제 아시아선수권(8.9~17·필리핀)과 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9.20~24·태국)을 준비해야 한다.

 

 

김연경은 “결승전을 앞두고 후배들에게 ‘여기까지 온 것도 잘 했다’고 얘기해줬다. (결승전에서) 분위기를 다시 띄우려고 했지만 체력적으로 힘들어해 잘 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준우승도 만족한다. 후배들이 잘 해줬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재정 지원 부족으로 지난 2년간 그랑프리에 출전하지 못했던 것 등을 떠올리며 “어린 선수들이 (큰 대회에 나가) 더 경험을 했다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김연경은 팬들이 걸어준 꽃목걸이의 화려한 색상과 대조되는 두툼한 얼음 찜질을 오른 어깨에 두른 채 선수단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결승전 바로 다음날 오스트라바에서 프라하를 거쳐 한국으로 귀국하는 고된 여정에 다시 몸을 실었다.

 

 

(오스트라바=한겨레)

글·사진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