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 “일본 못이겨서 마음 아파요” | 2009/11/27
인터뷰/ 그랜드챔피언스컵 득점왕 김연경
‘JT 10’은 김연경(21·일본 JT마베라스)의 일본에서의 닉네임이다. 소속팀과 등번호다. 지난 15일 2009 그랜드챔피언스컵이 막을 내린 후쿠오카 마린메세체육관 기념품 코너에선 이 글자가 적힌 휴대폰 고리가 불티나게 팔렸다. 20여개를 산 김연경은 그날 밤 숙소에서 선수단 모두에게 이 고리를 나눠줬다.
지난 10일 2009 그랜드챔피언스컵 국제여자배구대회 한국과 일본의 개막전 3시간여를 앞두고 중계방송사인 <엔티비>(NTV)가 한 시간 가량을 할애해 일본 최고의 인기 개그우먼인 이모토 아야코(23)가 김연경을 만나는 익살스런 특집방송을 내보냈다.
여자배구 국외진출 1호
일본팬들 뜨거운 인기
경기장 입장때 관중 환호
한국팀이 경기장에 입장할 때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관중들이 김연경을 연호하며, 사진 플래시를 터뜨렸다. 대회 마지막날 체육관 인근 도로에 길게 늘어선 일본팬들이 한국선수단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어대자, 김연경은 창문을 열어젖힌 채 그 긴 몸을 쭉 빼 “아리가토! 아리가토!”(고마워요)라고 화답했다.
한국 여자배구 선수로는 국외 진출 1호인 김연경은 일본생활 한달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인기가 높다. 최고의 실력에다 일본인들이 좋아할 깜찍한 외모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1승4패로 6개 팀 중 5위에 그쳤지만, 그는 5경기 99점으로 득점왕(상금 5만달러)에 올랐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태극마크를 4년째 달고 있는데 일본에 한 번도 이기질 못했다”며 “그게 꼭 내가 못해서인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는 “이기겠다는 마음을 갖고 경기에 들어가는데 뭔가 당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코트에서 나오곤 한다”며 “사실 일본 국가대표팀 시스템에 비해 우린 협회와 연맹의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 대회에 대표팀의 합숙훈련 기간이 불과 사흘밖에 안된 것을 두고 한 얘기다. 대우가 좋지 않은 것 역시 불만이다. “일본은 스태프진이 10명이 넘는다. 우린 아직도 선수들이 손수 빨래를 해야 한다. 운동에만 전념할 분위기가 못되는 것은 당연하다.”
팀 숙소가 오사카에 있는 그는 “동료들이 잘 대해줘 지낼만 하지만 처음엔 훈련에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아침 먹고 휴식 없이 오전 내내 훈련, 점심 뒤에도 마찬가지다. 일단 한 달 정도 스케줄이 짜여지면 변동없이 그대로 진행되는 훈련이 처음엔 힘들었다.” 국내 구단들의 스케줄이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뜻이다.
이번 대회 세터상을 받은 다케시다 요시에(31)와는 한 팀이다. 팀은 작년 10개 팀 중 9위였지만 김연경 등의 영입으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일본서 잘 뛰어 유럽에 꼭 가고 싶다”는 그는 ‘상금을 어디에 쓸 거냐’는 물음에 “국가대표 동료들에게 멋진 가방 하나씩 사줄 거에요”라고 했다.
한겨레 권오상 기자 ko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