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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배구 분석력 겪어보니 질릴 지경 | 2009/12/09

일본의 데이터 배구에 깜짝 놀랐어요. 마음만 먹으면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 수도 있어요.”

 

한국 여자 배구의 에이스 김연경(21·JT 마블러스)이 일본의 ‘현미경 배구’를 배우고 있다. 김연경은 8일 본지와 통화에서 “일본 팀의 전력 분석 수준은 엄청나다. 그동안 한국이 왜 일본만 만나면 무기력하게 패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전했다. 한국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본선에서 일본을 꺾은 뒤로 1승16패로 절대 약세다. 그나마 1승도 지난해 AVC컵 대회에서 일본이 2진급 선수를 내보내 얻은 승리다.

 

국내에 머물러서는 세계의 벽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 김연경은 올여름 한국 여자 프로배구 선수 중 처음으로 일본에 진출했다. 활동 무대만 바뀌었을 뿐 1m92㎝의 큰 키에서 나오는 시원한 스파이크는 그대로다. 8일 현재 득점 2위(84점), 공격 성공률 4위(49.7%)를 기록 중이다. 지난 시즌 10개 팀 중 8위에 그쳤던 JT 마블러스는 김연경의 활약에 힘입어 개막 후 4연승을 달리며 단독 1위를 질주하고 있다. 그는 “아직 초반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일본에 진출한 뒤 많이 배우고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특히 데이터에 근거한 분석력에 혀를 내둘렀다. 일본 팀의 코칭스태프는 경기 전 구체적인 수치로 전략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상대 선수 A의 공격이 46% 이상 성공하면 우리는 승리하기 어렵다”는 식이다. 단순히 “A선수를 잘 막아야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이해가 쉽다.

 

서브를 넣을 때는 더 꼼꼼하게 지시한다. 김연경은 “목적타 서브(특정 선수를 겨냥해 넣는 서브)를 넣으라는 지시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B가 앞으로 한 발 움직이며 리시브할 수 있도록 서브를 넣으라’고 지시한다”고 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상대 선수의 리시브 방향, 그때의 공격 방향을 정확히 예측해 수비 위치까지 짚어 준다. 서브를 넣을 때 이미 다음 공격을 염두에 두고 수비 시프트가 가동되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몇 가지 예일 뿐이다. 경기 중에도 전력 분석관이 수시로 벤치의 컴퓨터로 데이터를 전송해 감독이 이를 토대로 상황에 맞는 작전을 지시한다”고 덧붙였다.

 

김연경은 한국 배구 발전을 위해 더 많은 지도자와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에는 팀이 5개밖에 없다. 선수층도 두텁지 않아 몇 시즌 뛰다 보면 서로 잘 알게 되고 선수들은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올 시즌에는 김연경뿐만 아니라 박주점 전 도로공사 감독도 덴소(프리미어리그)의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김연경은 “5일 덴소전이 끝난 뒤 박주점 선생님을 만나 오랜만에 우리말로 대화했다”며 “선생님도 부지런히 공부해 일본에서 배운 것을 한국에 전하고 싶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일본 생활에 대해서는 “말이 통하지 않아 외롭지만 경기장에 태극기가 걸리는 등 팬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한다”고 했다.

 

 

중앙일보 이정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