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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도쿄 대첩'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 | 2012/05/24

한국과 일본의 숙명의 대결이 펼쳐지기 전 이 경기를 중계 방송한 일본의 방송사는 의미 있는 장면을 내보냈다.

 

한국여자배구의 대들보인 김연경(24, 터키 페네르바체)을 막기 위해 일본 선수들이 펼치는 훈련 장면이었다. 남자 선수들을 데려다 놓고 김연경의 공격 패턴을 재현해 블로킹과 수비로 봉쇄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이후로 일본 1진은 한국을 상대로 22연승을 거뒀다. 가장 중요한 런던올림픽 예선전에서 한국을 상대로 23연승을 이어가겠다는 열의가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일본은 김연경에게 무려 34득점을 허용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일본리그에서 2년 동안 활약한 김연경은 리그 득점왕은 물론 최우수선수(MVP)에 등극했다. 김연경은 일본 무대를 평정한 뒤 터키 명문 구단인 페네르바체에 입단했다.

 

꿈에 그리던 유럽리그에 진출해 소속 팀을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려놓았다. 또한 MVP까지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도약했다.

 

김연경은 일본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성장해있었다. 블로커 세 명이 쫓아다녀도 김연경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일본이 자랑하는 리베로인 사노 유코는 김연경이 즐겨 때리는 크로스 위치에 자리를 잡고 디그를 노렸지만 볼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다.

 

스피드와 높이 여기에 넓은 시야까지 모든 것을 갖춘 공격수

 

김연경은 단순히 힘과 파워로 승부하는 유럽의 공격수와는 다르다. 아시아 선수의 한계를 뛰어넘는 높이와 스피드를 갖춘 것은 물론 빼어난 배구 센스까지 지녔다. 시야가 넓은 김연경은 상대의 빈 코트를 적절하게 공략했다. 또한 일본의 블로킹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스피드로 상대를 공략했다.

 

김형실 여자배구대표팀 감독은 "이 곳에서도 (김)연경이를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조명하고 있다. 일본과의 경기서 김연경은 자신의 역할을 120% 발휘했다. 블로커 세 명이 쫓아와도 뚫어낼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줬다"고 칭찬했다.

 

김연경은 1세트부터 60%를 육박하는 공격성공률을 보여줬다. 단순히 높이로만 승부하지 않고 빠른 발을 십분 활용해 일본의 수비를 무력화했다. 강타는 물론 연타와 페인트를 적절히 섞으며 수비진을 흔들어놓았고 상대 블로킹을 활용하는 타법도 구사했다.

 

다채로운 김연경의 플레이 앞에 일본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특히 4세트에서는 세 번 연속 후위공격을 성공시키면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

 

현재(24일 기준) 김연경은 득점 1위(93점), 공격성공률 2위(55.21%), 서브리시브 2위(50.62%)에 이름을 올렸다. 공격은 물론 서브리시브와 수비에서도 발군을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192cm의 장신이지만 탄탄한 기본기마저 갖췄다.

 

일본이 자랑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도 있다. 일본 방송은 기무라 사오리(26, 터키 바키방크)와 김연경을 계속 비교하면서 두 선수의 득점 상황과 공격성공률을 보여줬다. 뛰어난 배구 센스를 지닌 기무라는 21점을 올리며 분전했다. 그러나 여러모로 김연경이 한 수 위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김연경은 안좋은 볼은 물론 어느 위치에서도 득점을 올렸다. 반면 기무라는 세터 다케시타 요시에(34, JT마베라스)의 토스에 의존하거나 안정된 세트플레이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위기 상황에서 에이스답게 득점을 올리는 기량도 펼쳤지만 김연경과의 자존심 싸움에서 무릎을 꿇었다.

 

경기 도중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닥쳐왔지만 이러한 점도 극복해냈다. 김연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기량으로 일본 코트를 공략했다. 만여 명의 일본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도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을 펼치면서 강인한 정신력도 보여줬다.

 

 

에이스가 살려면 동료들의 선전도 중요

 

김연경의 위력이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원해주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밀 병기'인 김희진(20, IBK기업은행)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라이트에서 김희진의 이동공격이 통하면서 김연경의 활동 범위는 더욱 넓어졌다.

 

여기에 주전 세터 김사니(30, 흥국생명)의 빠른 토스와 리베로 김해란(27, 도로공사)의 끈질긴 수비도 인상적이었다. 김연경와 함께 날개 공격을 책임지고 있는 한송이(27, GS칼텍스)는 일본의 리시브 공략을 버텨냈다.

 

한송이의 리시브가 흔들리지 않은 점도 한국 승리의 요인이었다. 수비에서 자신감을 얻은 한송이는 과감한 공격으로 13점을 올리며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만약 다른 선수들이 부진했다면 김연경의 활약이 이처럼 빛을 발휘할 수 없었다. 런던올림픽에 반드시 가야한다는 열의는 동료들의 신뢰로 발전했다. 그리고 일본을 반드시 꺾어야 한다는 의지도 탄탄한 팀워크로 승화됐다.

 

한국은 지긋지긋한 22연패의 사슬을 끊고 도쿄대첩을 이뤄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한국이 반드시 이겨야하는 상대인 태국과의 경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승리를 통해 한국은 자신감을 얻었다. 그 중심에는 김연경이 있었고 훌륭하게 제 몫을 해준 동료들이 있었다.

 

 

엑스포츠뉴스 조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