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즈에게 들어보는 김연경과 한국 女배구 | 2012/06/17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부산사직체육관에서 열린 부산-IBK기업은행 2012 그랑프리세계여자배구대회(이하 그랑프리대회)에서 한국대표팀(이하 한국)은 쿠바, 터키, 일본과 경기를 펼쳤다. 한국은 지난달 열린 2012 런던올림픽 세계예선에서 전체 2위로 런던행을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 시점에서 세계 경쟁력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
배구에서 공격수와 세터는 '바늘과 실'의 관계와 같다. 공격수가 세터를 빛나게 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이 낳은 월드 스타' 김연경(24)의 맹활약에는 세터 나즈 아이데미르(22, 터키)의 공도 있었다.
배구에서 세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배구를 흔히 '세터 놀음'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세터는 경기 전체를 조율해야 한다. 야구의 포수, 농구의 포인트가드와 마찬가지다. 특별한 작전 지시가 없을 경우 사인을 통해 공격 패턴을 직접 결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즈는 세터 포지션을 '플레이메이커'라고 칭했다.
김연경은 올 시즌 터키 리그에서 뛰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김연경의 공격이 성공되는 과정에는 나즈가 있었다. 두 선수는 소속팀 페네르바체를 CEV(유럽배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각각 MVP와 베스트 세터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나즈의 제1 공격 옵션은 김연경이었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아야 한다. 그랑프리대회를 위해 한국을 찾은 나즈에게 이야기를 들어 봤다.
- 만나서 반갑다. 많이 늦었지만 CEV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축하한다. 언제부터 배구를 시작했나?
배구는 9살 때 처음 시작했다. 그 전에도 운동은 계속 했었다. 1년간 농구, 2년간 육상을 했었다. 그 이후 배구에 입문했다.
- 다른 종목을 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인가. 배구를 선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어머니와 아버지가 터키 국가대표 배구 선수였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배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연습에 나갔는데 코트에서 공을 만지는게 아니라 웨이트 트레이닝만 계속 했었다. 하지만 프로 선수들이 경기를 치르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 지난 시즌 김연경과 함께 멋진 활약을 선보였다. 지금까지 다양한 공격수들과 호흡을 맞춰왔을텐데 김연경과의 호흡은 어땠나. 처음에는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김연경과 함께 뛰면서) 나는 정말 즐거웠다. 어려운 상황에서 김연경에게 토스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결해줬다. (나즈는 "When I toss it, She kills it"이라고 표현했다) 그녀와 함께 경기하는데는 어떤 문제도 없었다. 단순히 잘 하는 것을 넘어선 엄청난 수준의 선수다. (나즈는 Excellent라는 표현으로 김연경을 추켜세웠다.)
- 당신의 토스워크가 좋았기 때문에 김연경도 많은 공격득점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내 토스워크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김연경은 주니어 레벨의 세터와 함께 뛰었다고 해도 해결사 역할을 해냈을 것이다. 김연경은 나와 함께 뛰면서 어려움이 있었을 수 있겠지만 난 전혀 없었다. 김연경에게 한번 물어봐 달라(웃음).
(김연경은 "나즈가 잘 맞춰주려고 항상 노력했다. 집에 초대해서 가족과 함께 시간도 보내는 등 친근하게 다가오려고 노력하더라. 경기장에서는 내가 공격을 성공시켜줌으로써 믿음이 더욱 강해졌다"고 덧붙였다.)
- CEV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끝나고 김연경이 MVP를 수상했고 당신은 베스트 세터상을 받았다. 당시 소감은 어땠나.
가장 중요한 것은 챔피언 자리에 오르는 것이었다. 만약 우승에 실패하고 상을 받았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챔피언을 차지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이 따라왔을 뿐이다. 챔피언이 됐다는 자체가 더 중요했다.
- 김연경은 한국에서도 팀의 분위기메이커였다. 아무래도 낯선 리그이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었을텐데 팀에서 김연경은 어떤 존재였나.
우선 김연경은 터키 말을 굉장히 빨리 배웠다. 아마 내가 아는 이들 중 터키어를 가장 빨리 배웠을 것이다. 그녀는 정말 많은 (터키어)단어를 알고 있는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단어를 사용해야 할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의사소통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없었다. 나를 포함해 동료들 모두 그녀를 정말 좋아했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김연경을 형제처럼 생각했다.
나즈는 답변 도중 "나는 김연경을 정말 좋아한다(I like her so much)"라며 환하게 웃었다. 실력은 물론 대인관계도 원만하다는 점은 김연경의 또 다른 장점이다.
- 플레이오프 조별리그 2차전 갈라타사라이전에서 관중 난동으로 인해 위험한 상황이 있었다. 당시 김연경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국내 배구에선 그런 상황이 발생한 적이 없어서 놀랐을 법도 한데 당시 상황을 설명해달라.
김연경은 굉장히 느긋한(Easygoing) 성격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그 당시는 많은 이들이 겁에 질려할 상황이었다. 로건 톰(미국)은 겁에 질려서 울고 있었다. 하지만 김연경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료들을 웃게 해줬다.
- 김연경이 다른 공격수들과 비교해 특별한 점이 있나.
같이 플레이하기에 굉장히 편안한 스타일이다. 보편적인 아시아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좋지 않은 토스도 모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보통 다른 아시아 선수들은 빠르고 좋은 토스에만 강점을 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김연경은 챔피언스리그 4강(디나모 카잔전)에서 가모바보다 많은 득점을 올렸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What to say more). 그녀는 공격은 물론 리시브, 블로킹, 서브까지 완벽한 선수(Complete Volleyball Player)다. 팀 동료인 류보프 소콜로바(러시아)는 '배구 여신'이라고 불렸는데 김연경이 이를 뛰어넘고 있다.
나즈가 언급한 선수인 예카테리나 가모바는 '러시아 배구 여제'로 평가받는 장신 공격수다. 페네르바체와 디나모 카잔 간의 CEV 챔피언스리그 4강은 김연경과 가모바의 맞대결로도 주목받았다. 이날 김연경은 32득점 공격성공률 46%로 19득점 공격성공률 38%에 그친 가모바를 압도했다. 김연경의 '월드 클래스' 등극을 유럽 전역에 알린 중요한 경기였다.
- 최근 한국 배구의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 바로 서브리시브다. 정확한 리시브가 공격의 첫 번째 단계라고 본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세터) 할 일은 좋지 않은 리시브를 바로잡는 일이다. 잘못된 리시브를 정확히 올려주는 것도 세터의 몫이다. 모든 세터들이 좋은 리시브만 받아올릴 수 없고 모든 공격수들이 좋은 토스만 받아 공격할 수도 없다. 나쁜 토스도 득점으로 연결시켜야 한다. 좋은 리시브를 좋은 토스로 연결하는 것은 누구나 할수 있다. 그래서 세터가 '플레이메이커'라는 것이다.
나즈의 말에서 세터와 서브리시브의 중요성을 찾을 수 있었다. 잘못된 리시브를 바로잡아 좋은 토스로 연결시켜야 하는 것이 세터의 몫이다. "좋은 리시브를 좋은 토스로 연결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나즈의 말은 좋은 리시브가 잘 이뤄지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또한 나즈는 국내 V리그에서 외국인선수의 공격 점유율이 유독 높은 것에 대해 "그것이 외국인선수가 자국 선수들에 비해 많은 돈을 받는 이유"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 이번에 터키가 런던올림픽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터키 남녀 배구 역사를 통틀어 처음인 것은 물론 구기 종목 사상 두번째 올림픽 진출이다. 당시 느낌이 어땠나.
맞다. 런던행을 확정짓는 마지막 득점이 내 블로킹으로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우리가 얼마나 큰 일을 해냈는지 몰랐다. 코트에서 세리머니를 할 때 깨달았다. 우리가 올림픽에 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에 너무나 기뻤다.
- 이번 그랑프리대회서 한국과 맞대결을 펼쳤다. 김연경과의 맞대결을 기대했는데 성사되지 않아 아쉬워하는 팬들이 있다.(김연경은 이번 그랑프리대회에 나서지 않았다)
이번 경기에서 김연경이 경기에는 나서지 않았지만 벤치에서 계속 나와 눈을 마주쳤다(웃음). 그녀가 나오지 못해 아쉽다.
- 올림픽 본선에서는 한국과 터키가 같은 조에 속해 있다. 맞대결을 펼쳐야 할텐데.
김연경을 상대팀으로 만났을 때 어떻게 막아낼 지 연구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과 터키 모두 올림픽 메달을 원하고 있지 않나. 모두 총력전을 펼칠 것이다.
-김연경과 함께 뛰면서 한국에도 나즈 선수의 팬들이 많이 생겼다. 이미 얘기는 들었을텐데 기분이 어떤가.
다른 나라에도 팬이 있다는 건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한국에도 팬이 많다고 하니 정말 기분 좋다(웃음).
- 팀을 옮겼다고 들었는데?
페네르바체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직 사인은 안했다.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 이탈리아, 터키 리그 팀과 접촉은 했다. 이제 결정할 시간이다. 시일 내에 결정할 것이다.
엑스포츠뉴스 강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