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인터뷰

네버엔딩 인터뷰 | 2010/08/04

마냥 어린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은 또 깊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김연경 장학회'를 이야기할 때는 두 눈이 반짝였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이 아이가, 아니 이 사람이 좋았다. 그래서 인터뷰 후에는 염치 불구하고 '휴대폰 셀카'를 요청했다. 김연경은 흔쾌히 응해줬다. 햇살이 따사로운 7월말, 태릉선수촌 소집 훈련 중인 김연경과의 데이트는 유쾌한 웃음으로 가득 찼다.

 

▲일본 첫 시즌은 절반의 성공

 

-일본에서 고생했나보다. 얼굴이 좀 상한 것 같은데…

 

"고생해서 그런 건 아니다. 사실 최근에 잡티 제거를 위해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 밖에서 운동하며 햇빛에 노출되니 얼굴에 트러블이 많이 생기더라. 아직 얼굴이 다 가라앉은 게 아니라 사진 찍는 게 조심스럽다." (김연경은 사진기자에게 포토샵 수정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첫 해를 마친 소감은?

 

"목표치를 달성했다. 개인적으로는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팀이 우승을 하지 못한 것이 좀 아쉽긴 하다. 내년에도 또 잘 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된다. 첫 해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으면 자존심 상할 것 같다."

 

-일본에서 반기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시기하는 사람도 있었을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처음엔 한국에서 왔으니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너희들이 우리보다 밑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개인 성적이 좋아지니까 동료들이 먼저 와서 말을 걸더라. 일본 선수들은 냉정하기도 하지만 실력이 좋으면 잘 대해준다. 나 스스로도 먼저 다가가려고 많이 노력했다.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진 것 같다."

 

-일본 배구도 야구처럼 세밀하기로 유명하다고 들었다. 어느 정도인가?

 

"선수 개인별 데이터와 성향을 분석해 대응했다. 이에 따라 공격시 스파이크의 방향이나 수비 위치 등을 조정했다. 나와 상대하는 팀에는 거의 전담 마크맨이 있었다. 나에게 공격이 집중된다는 걸 알고 나서는 공격시 3명이 한꺼번에 블로킹 벽을 만들어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럴 때 득점하면 더 짜릿하다."

 

-팀에서 본인에게 원하는 역할은 무엇이었나?

 

"역시 득점이다. 한국에서는 수비도 어느 정도 중요시하지만 일본에서는 스파이크·블로킹 등 공격에 집중하라고 요구한다. 한국에서 공격과 수비의 비중이 50대50이었다면 일본에서는 70대30 정도랄까. 아무래도 외국인선수이다보니 해결사 역할을 기대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는 사이에 원소속팀 흥국생명은 최하위로 처졌다. 느낌이 어땠나?

 

"멤버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잘 할 줄 알았다. 언니들과 전화 통화를 많이 했는데 다들 '다시 오라'고 이야기하더라. 정말 돌아와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목표가 많다."

 

-다가오는 시즌 목표는 무엇인가?

 

"지난해 우승을 하지 못해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지 못했다. 올해는 꼭 팀이 우승해 내가 MVP를 받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득점 1위를 해야 한다. 공격성공률도 지난해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이고 싶다."


▲여자 김연경, 이상형은 2PM 닉쿤

 

-이제 배구 이야기 말고 재밌는 이야기 좀 나눠보자. 화장할 기회가 별로 없을텐데 화장했을 때 동료들의 반응은 어떤가?

 

"일단 내가 어색하다. 동료들은 예쁘다고 할 때도 있지만 그냥 어색하다는 반응이 많다. 그래도 이제는 밖에 외출할 때는 항상 화장을 하는 편이다."

 

-머리는 항상 짧게 자르는 이유가 있나?

 

"내 얼굴에는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리고 일단 편해서 좋다. 작년에 일본 가기 전에 머리를 묶은 적이 있는데 신경 쓰여서 연습이 잘 안 됐다. 주변 사람들도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한다."

 

-다리가 길어서 치마를 입으면 잘 어울리겠다.

 

"치마는 교복 말고는 한번도 입어본 적이 없다. 배구 선수들은 대부분 치마를 잘 입지 않는 것 같다. 시상식 때 가끔 입기도 하는데 서로 쳐다보면 민망해서 웃음만 나온다."

 

-영화배우 조인성이 이상형이라고 밝혔는데, 지금도 변함 없나?

 

"요즘엔 2PM 닉쿤이 귀엽다. 잘 생겼지만 남자다운 면도 있는 것 같아 좋다. '우리 결혼했어요'도 요즘 꾸준히 챙겨보고 있다. (즉석에서 이병훈 해설위원이 닉쿤과의 만남을 주선하겠다고 약속하자) 정말이요? 그때는 대표팀 멤버들 다같이 나가야겠다."

 

-남자친구는 있나? 결혼은 언제쯤 생각하고 있나?

 

"지금은 없다. 일본 진출 초반에 헤어졌다. 떨어져있다보니 멀어졌다. 아직 나이가 어리니 결혼을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역 선수 중 결혼한 선수들을 보면 일찍 결혼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정대영, 장소연 등 선배들도 결혼하고나서 잘 뛰지 않느냐. 운동선수들이 남자 사귀면 시선들이 좋지 않아 걱정되는 면은 있다. 하지만 자기 일에 소홀해지지 않으면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결혼 상대를 만났는데 부모님이 반대한다면 어떻게 하겠나?

 

"내가 설득하겠다. 충분히 설득이 된다. 큰 결정을 할 때마다 항상 부모님은 내 결정을 믿어주셨다. 한번도 그런 일에 대해 걱정해 본적 없다. 우리 집안은 자유스러운 편이고, 나는 부모님을 믿는다."

 

-일본 남자들은 연애 상대로 어떤가?

 

"일본 남자들은 잘 생기긴 했는데 키가 너무 작다. 키 작은 남자가 싫다는 건 아니고, 내 키가 크다보니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맞아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게다가 너무 여성스러운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별로다. 하지만 축구선수 혼다 게이스케는 남자답고 강인한 인상이라 좋아한다."

 

-문신을 새겼다고 들었는데…

 

"허리 뒤쪽에 새겼다. 유니폼 상의가 올라가면 살짝 보이기도 한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의미의 라틴어다. 팬 서비스 차원에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김요한 선수도 팔뚝에 커다란 문신을 했다. 보이는 데다 하나 정도 더 하고 싶은데 고민 중이다."

 

▲23살 김연경은 성장 중

 

-'김연경 장학회'를 만들어 지난해부터 어려운 선수들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인데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어릴 때도 어려운 환경에서 운동을 했고, 주변에도 어렵게 운동하는 아이들을 많이 봐왔다. 어린 선수들이 돈이 없어 배구를 그만 두는 걸 보고 언젠가는 이런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구단(흥국생명)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 나도 기꺼이 하자고 생각했다. 시간이 되면 배구 클리닉도 열어 꿈나무들을 돕고 싶다."

 

-배구 꿈나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식상한 말이지만 꿈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환경도 많이 좋아졌다. 나는 중학교 졸업할 때 키가 170cm도 채 되지 않았다. 포지션도 없이 이것 저것 가라지 않고 하다보니 훗날 좋은 재산이 되더라. 그리고 기본기 연습을 충실히 하고, 시간 나면 공부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조금 후회되기도 한다."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리더십이 강하다'고 한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글쎄…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행동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해외에 진출해 있고 먼저 뭔가를 이뤄놨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바른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면 더 질투하려나. 어쨌든 경기를 할 때 만큼은 누구보다 즐기면서 열심히 한다고 생각한다."

 

-김연경에게 팬들은 어떤 의미인가?

 

"일본에 있으면서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가장 많이 깨달았다. 피곤하고 힘들어도 팬들과 소통할 시간을 따로 내는 편이다. 가족 다음으로 힘이 됐다. 한번은 국내 팬들이 단체로 일본 원정 응원을 와 깜짝 놀랐다. '연경 선수 응원하러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어요'라는 말 들었을 때 정말 찡했다. 일본이라서 더욱 그랬다. 개막전 때도 팬들이 왔었고, 최다 득점하는 날에도 자리를 지켰다. 경기에 이겨 여유 있을 때는 한국 식당에서 같이 고기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난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인생에 몇 점을 주겠나?

 

"90점 정도? 10점은 아직 남은 것 같다. 아직 선수 생활도 조금 밖에 안 했고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배구선수가 35세 정도면 끝난다. 10년 정도 남았는데 좋은 선수로 오래 기억되고 싶다. 은퇴해서는 지도자를 하고 싶다. 지도자를 하면서 배구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꿈나무 선수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 라이벌 日 감독도 극찬

 

김연경은 2005년 흥국생명에 데뷔해 최우수선수(MVP)·득점상 등 각종 타이틀을 휩쓸었다. 국내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지난해 일본 프리미어리그 JT 마블러스에 입단했다. 여자배구 선수로는 조혜정(현 여자배구 GS칼텍스 감독)에 이어 두번째, 프로배구 출범 이후 최초의 해외 진출이다.

 

일본 입단 첫 해부터 에이스로 부상한 김연경은 득점상(696점)을 차지했다. 덕분에 팀은 개막전부터 25연승을 기록했고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외에도 공격 성공률 3위, 세트당 공격 횟수 1위 등 전반적으로 좋은 성적을 냈다. 아쉽게도 포스트시즌 결승에서 전년 우승팀 도레이에 패했지만,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인 베스트 6에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경쟁팀인 덴소의 다츠카와 미노루 감독은 "일본에서도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이데일리

글 오명철 기자 omc1020@joongang.co.kr, 사진 김민규 기자

 

[네버엔딩 인터뷰①] 김연경, 인생 몇점?..작년 득점왕 했으니 90점쯤

[네버엔딩 인터뷰②] 김연경 "이상형? 예전엔 조인성, 지금은 닉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