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인터뷰

김연경, 더 넓은 무대를 향해 | 2008/03/24

“사진 잘 찍어주세요.” 사진 촬영을 위해 숙소를 나섰는데 봄날 같지 않게 눈 섞인 비가 내린다. 훈련이 끝난 체육관에는 난방이 되지 않는다. 

촬영을 위해 숙소에서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김연경이 체육관이 썰렁하다며 홍보 담당 진혜지 씨에게 장난 섞인 투정을 부린다. 

진씨는 지난 시즌까지 함께 뛴 선수 출신이다. 껑충한 키에 짧은 머리칼, 유니폼 위에 후드티를 걸쳐 입은 김연경은 영락없는 10대 소년이다. 주변에서 그런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 이제는 면역이 됐다. 

“그래서 이미지를 바꾸려고 머리를 길렀는데.” 김연경의 머리카락은 시즌 초반과 달리 짧아졌다. 

지난해 12월 1일 2007-08시즌 V리그 개막전 흥국생명-KT&G전이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벌어졌다. 체육관을 찾은 모 구단 관계자가 코트에서 몸을 풀고 있는 김연경을 보고 한마디 했다. 

“머리를 기르니까 이제 구별이 된다. (짧은 머리를 하고 있을 때는) 멀리서 보면 꼭 남자선수가 스파이크를 하는 것 같다.” 

김연경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각오를 새롭게 하기 위해 헤어 스타일을 바꿨다. 동료들은 “잘 어울린다”고 칭찬했지만 김연경 스스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시즌 첫 경기에서 흥국생명은 KT&G에 1-3으로 졌다. 이날 황연주는 30점, 마리 헬렌은 19점을 올렸지만 김연경은 8점에 그쳤다. 공격 범실도 5개나 저질러 명성에 못 미쳤다. 

그래서 예전의 짧은 헤어스타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김연경은 시즌 두 번째 경기인 도로공사전부터 제 실력을 발휘했다. 27점을 뽑아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머리 모양을 마음에 들지 않게 손질한 미용실이 밉다.” 코트에서는 상대 블로킹 사이로 강타를 날리는 김연경이지만 코트를 벗어나니 소년이 아닌 소녀였다. 

김연경의 투정을 듣고 있던 황연주가 한마디 거들었다. “연경이가 성격이 급해서 이러는 거다. 마음에 안 든다고 바로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나. 꾸준하게 한 가지 일을 못한다”라며 놀린다. 

황연주의 말을 들은 김연경이 뒤에서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한다. 선수들 사이에서 웃음보가 터진다. 황연주는 김연경의 1년 선배다. 중학교 때부터 계속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어 무척 친하다. 

김연경은 키에서 다른 팀 센터에 견줘도 밀리지 않는다. 티파니 도드(193cm,현대건설)와 하께우 실바(191cm,GS 칼텍스)보다는 약간 작지만 페르난도 베르치 알비스(190cm,KT&G), 김세영(190cm,KT&G), 양효진(190cm,현대건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프로에 입단할 때 185cm였는데 그동안 키가 5cm나 자랐다.” 김연경은 국내 여자배구 공격 기록을 다시 쓰고 있다. 

프로 입단 첫 시즌인 2006년 1월 22일 KT&G전에서 한 경기 최다득점인 44점을 올렸다.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2위 기록도 김연경이 세웠다. 한 달 뒤 GS 칼텍스전에서 작성한 43점이다. 프로 통산 1,500득점을 가장 먼저 넘어선 선수는 정대영(183cm,GS 칼텍스)이지만 프로 3년생 김연경이 곧바로 따라잡았다. 

김연경은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에서 주전 레프트 자리를 굳혔다. 김연경은 지난 시즌부터 종종 “해외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해외 진출은 쉽지 않다. 

황현주 감독과 소속팀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반대하고 있다. 해외 진출을 위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을 얻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한국배구연맹(KOVO)의 FA 규정 제3조 취득 조건에 따르면 ‘정규시즌 6시즌이 지난 선수에게 FA 자격이 주어진다’고 돼 있다. 김연경은 2010-11시즌이 끝나면 FA 자격을 얻는다. 

그러나 해외 진출을 위해 풀어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원 소속팀에서 이적에 동의를 해야 한다. 

황감독은 “(김)연경이는 아직 어리고 실력이 더 늘 가능성이 충분하다. 유럽과 남미선수들보다 파워가 떨어진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한편에서는 김연경이 해외로 나갈 경우 국내여자배구가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고 걱정한다. 김연경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해외무대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김연경은 2006년 12월 도하아시아경기대회에서 태국에 1-3으로 진 상황이 지금도 생생하다. 

“경기가 끝난 뒤 알았지만 태국선수들 대부분이 해외에서 뛰고 있었다. 해외리그 경험이 쌓이다 보니 태국선수들 실력이 많이 늘었다.” 

김연경은 약점으로 지적 받고 있는 파워를 키우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에 더욱 신경 쓰고 있다. 김연경은 지난 두 차례 챔피언결정전에서 모두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SPORTS2.0 제 96호, 류한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