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흥국생명의 합의 실패와 언론의 역할 | 2014/11/08
2012년 6월 30일(김연경과 흥국생명 배구단 간의 계약 만료일)까지 흥국생명과 원만하게 합의를 하고 나서 외국 구단과의 계약을 체결하는 게 기본적인 매너라고 생각했기에 직접 만남을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흥국생명 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서로가 '윈윈(Win-Win)' 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한국배구연맹(KOVO)과 대한배구협회(KVA) 관계자들을 만나 김연경 측 의사를 재차 전달하며 중재를 요청했다.
김연경 측은 계약 종료일 이전 선수가 원하는 외국 구단과의 이적 계약을 전제로 한 흥국생명 배구단과의 재계약 합의를 제안했다. 굳이 흥국생명과 재계약을 하지 않아도 되는 김연경이 재계약을 하면 흥국생명은 이적료를 받고 김연경을 이적시킬 수 있다. 김연경이 다시 국내로 복귀하게 되면 한국배구연맹 규정을 적용받아 흥국생명 소속이 되기 때문에 흥국생명이나 김연경 모두를 고려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흥국생명 측은 무조건 재계약 후 흥국생명에서 활동을 하거나 해외 임대 계약만을 주장했다. 계약이 끝난 김연경이 무조건 재계약을 해야 한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지만 만약 국내 리그에서 활동을 할 것이라면 '울며 겨자 먹기'식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그러나 김연경은 해외 활동을 원하고 있었고 모든 관련 규정상 2012년 7월 1일 이후에는 계약관계에 있는 구단이 없기 때문에 외국 어느 구단과도 자유롭게 계약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해외 임대 계약 후 활동한 기간은 원래 계약 기간에서 소멸되는 것이 스포츠계에서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활동한 기간만을 인정한다면 어느 누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당시 김연경은 흥국생명에서 4시즌(2005~06, 2006~07, 2007~08, 2008~09)을 보낸 후 임대로 일본 JT마블러스에서 2시즌(2009~10, 2010~11), 그리고 터키 페네르바체에서 1시즌(2011~12)을 포함하여 총 7시즌을 흥국생명 소속으로 뛰었다.
이런 식으로 흥국생명과 무조건 재계약을 하게 된다면 흥국생명이 영원히 해외 임대를 보내도 되는 셈이다. 따라서 에이전트는 김연경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재계약에 대한 전제 조건을 달았던 것이다. 그 조건을 거절한다면 흥국생명과 협의할 이유도 없이 규정대로 국제 이적을 추진하는 게 마땅했다.
김연경이 규정을 잘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서 구단과 담합하여 계속 임대를 보내고 마치 노예처럼 묶어 두며 흔히 말하는 '좋은 게 좋은 거야'라고 하면서 잇속을 챙긴다면 나중에 김연경이 이를 알게 됐을 때 그 실망감과 충격, 그리고 그로 인해 이미 발생해버린 손해는 누가 보상할 것이며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몇몇 기자들은 `왜 해외 자유 이적 계약만을 고집하느냐?' `왜 임대 계약은 받아들일 수 없느냐?' 라고 물으면서 마치 돈에만 눈이 멀어 김연경을 망치고 있는 것처럼 비하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 파견 근무를 했는데 기간이 소멸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지, 스포츠계의 계약에서 해외 임대 활동 기간이 소멸되지 않는 케이스가 있는지, 더 나아가 노예로 평생을 먹고 살기만 하면 되는지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게 맞는지.
이 절박하고 중요한 상황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라고 옳지 않은 것이라도 힘 있는 자의 의도대로 무조건 추종하거나 편을 든 것은 아닌지 진심으로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한 번은 더 객관적으로 문제점을 자세히 냉철하게 들여다보는 게 언론의 역할이 아닐까.
▶국내.외 국제이적 관련 규정을 지킨 김연경
국제 이적의 경우, 흥국생명은 계약 만료 이전에 선수와 재계약을 해야만 임대료나 이적료를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계약 종료일 후에는 국제배구연맹(FIVB) 규정상 클럽 오브 오리진(Club of Origin)이 없으므로 흥국생명은 그 이적 건에 있어서 어떠한 권리도 행사할 수 없다. 따라서 2012년 7월 1일 이후 김연경은 흥국생명 구단과는 무관하게 외국 어느 구단과도 계약할 수 있었다.
국제 이적 절차에 관련된 당사자는, ①Player (해당 선수-김연경 선수), ②NF Origin (이적을 하려는 선수가 소속된 국가의 배구협회-대한배구협회), ④Receiving club (선수를 영입하고자 하는 구단-당시 터키 페네르바체), ⑤Receiving NF (영입 구단이 소속된 국가의 배구협회-당시 터키 배구협회)이 필수적이며 선수를 이적시키는 구단은 ③Club of Origin에 해당될 때에만 (if applicable) 당사자로서 이적 절차에 참여할 수 있다. Club of Origin의 요건은 선수와 이적을 시키는 구단 사이에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경우 그 이적시키는 구단을 일컫는 용어다.
규정에 따라 흥국생명은 2012년 7월 1일 이후 김연경의 'Club of Origin'이 아니다. 참고로 한국배구연맹(KOVO) 규정에 나오는 '원소속구단'이란 용어는 국제배구연맹(FIVB) 규정의 'Club of Origin'과 전혀 관계가 없다.
또한 국제배구연맹(FIVB)의 선수 이적과 관련된 개별 규정(45.1.3)을 보면, 선수와 구단은 자국 내 이적 (local transfer)의 경우 그 나라 배구협회(NF)의 규정에 따라야 하고, 국제 이적(international transfer)의 경우 국제배구연맹(FIVB)의 규정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리고 대한배구협회 규정 역시 선수의 해외취업은 국제배구연맹 국제이적동의 규정에 따른다고 정해져 있다.
김연경 측은 관계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건을 제안했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시 말해 흥국생명이 'Club of Origin'으로서 자격이 있을 때 즉, 2012년 6월 30일 이전에 이적료를 받게 해 주자는 선수 측의 배려가 담긴 제안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에이전트와는 절대 대화하지 않겠다는 흥국생명 측의 완강한 태도 때문에 의미를 잃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김연경은 국제 이적 관련 모든 규정을 준수하면서 터키 페네르바체 구단과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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