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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포츠 10년 빛낸 10인의 스타⑧김연경 | 2014/11/08

'조이뉴스24'가 독자들에게 첫선을 보인 지난 2004년, 국내 여자고교배구에는 한 선수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수원 한일전산여고를 다니고 있던 고교 2년생 선수에게 여자배구 관계자들의 모든 관심이 몰렸다.

 

주인공은 바로 김연경(페네르바체)이다. 당시 국내 배구계는 프로출범을 선언한 뒤였다. 실업에서 뛰고 있던 기존 선수들뿐 아니라 팬들과 매체들의 관심을 끌어줄 새로운 스타가 당장 필요했다. 때마침 향후 10년 뒤까지 한국여자배구를 책임질 대형 유망주 김연경이 등장했고 기대대로 그는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김연경 쟁탈전, 그리고 국내 코트 평정

 

김연경은 2005-06시즌 개막을 앞두고 열린 신인 드래프트 참가가 예정됐다. 그런데 프로배구 원년이던 2005년 여자부 경기에서는 김연경 때문에 부작용이 생겼다.

 

시즌 최하위를 차지한 팀이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는 규정 때문에 하위권에 속한 팀들끼리 꼴찌 경쟁을 펼쳤다. 김연경은 결국 2005-06시즌 드래프트에서 흥국생명에게 전체 1순위로 뽑혔다.

 

한국배구연맹은 이후 드래프트 제도를 손질했다. 드래프트 순번을 위한 고의 패배를 사전에 막겠다며 확률추첨 제도를 도입했다. 김연경이 가세한 흥국생명은 더이상 약체가 아니었다. 김연경보다 한 해 먼저 프로에 입단한 황연주와 함께 흥국생명은 다른 어느 팀보다 탄탄한 좌우쌍포를 갖췄다.

 

최하위팀에서 단숨에 우승후보로 꼽힌 흥국생명은 결국 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까지 품에 안았다. 김연경은 신인왕 뿐만 아니라 정규시즌과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막 고교를 졸업한 새내기 선수가 V리그 여자부 코트를 평정하며 안겨준 충격은 컸다. 연맹은 남자부에 이어 2006-07시즌부터 여자부에서도 외국인선수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외국인선수가 각 팀에 합류해도 김연경은 상대팀에게 알고도 못막는 선수가 됐다. 김연경이 중심이 된 흥국생명은 V리그 코트에서 공공의 적이 됐다.

 

▲해외진출, 일본을 넘어 유럽으로

 

국내 코트가 좁게만 느껴졌던 김연경은 2009-10시즌 일본 V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다. 소속팀 흥국생명은 임대 신분으로 김연경을 해외리그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김연경에게는 일본 코트도 좁았다. JT 마블러스 입단 첫 해 소속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2008-09시즌 9위를 차지했던 JT 마블러스는 김연경 영입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JT 마블러스는 정규시즌에서 25연승으로 내달렸다. 이는 일본리그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2010-11시즌 JT 마블러스는 챔피언결정전에서 토레이에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김연경의 활약은 여전했다. 일본리그 최고의 선수로 자리잡았다.

 

V 프리미어리그 각 팀의 코칭스태프, 관계자들 그리고 일본 매체들은 김연경에 대해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고 입을 모았다. 이 때부터 김연경과 원소속팀 흥국생명 사이에서는 마찰음이 슬슬 들리기 시작했다.

 

일본이 아닌 유럽 진출을 원했던 김연경은 터키리그로 발걸음을 돌렸다. 페네르바체 유니폼을 입은 김연경은 2011-12시즌 소속팀의 정규시즌 22연승 무패 행진에 힘을 보탰다. 또한 유럽 빅클럽팀들의 경연장인 챔피언스리그에서 페네르바체를 우승으로 이끌었고 결승 토너먼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한국과 일본을 넘어 국제배구의 중심 유럽무대에 김연경의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리게 됐다. 하지만 김연경은 흥국생명과 지루한 선수 자격 시비에 휘말렸다.

 

김연경은 일본과 터키리그에서 활동한 기간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데 필요한 연수를 채운 것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흥국생명은 그럴 수 없다고 맞섰다. 양 측의 주장이 팽팽한 가운데 '김연경 사태'는 평행선을 달렸다.

 

이런 가운데 김연경은 국가대표팀에 뽑혀 2012 런던올림픽 세계예선전에 참가했다. 당시 김형실 감독이 이끌고 있던 대표팀은 김연경을 앞세워 라이벌 일본을 도쿄 원정길에서 꺾으며 올림픽 본선 티켓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런던에서 한국대표팀은 신화를 썼다. 미국, 브라질 등 강팀과 함께 속한 A조에서 조별리그 통과가 힘들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8강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8강전에서는 이탈리아를 3-1로 꺾었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이후 36년 만에 올림픽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달성한 것이다.

 

아쉽게도 대표팀은 준결승에서 미국에 막혀 3-4위전으로 밀려났고,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에게 무릎을 꿇었다. 한국대표팀과 김연경의 올림픽 도전은 잠시 숨을 고르게 됐다. 그래도 김연경은 런던올림픽 여자배구 출전팀 선수들 중에서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대회 여자배구 최우수선수로 뽑힌 것에서 그의 진가를 세계가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

 

▲2016 리우올림픽, 또 다른 도전

 

김연경은 국제무대에서 큰 발자국을 남겼다. 그의 플레이를 지켜본 해외배구 관계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꼽았다.

 

그동안 여러 개인과 단체 종목에서 국내를 떠나 더 넓고 큰 무대에서 활약한 선수는 많았다. 그러나 해당 종목에서 김연경만큼 최고의 '원톱'으로 인정을 받았던 이는 드물었다.

 

와중에도 김연경의 선수자격를 둘러싼 갈등은 계속됐다. 김연경과 페네르바체의 계약을 대행한 소속사는 흥국생명, 대한배구협회 등과 여전히 대립각을 세웠다. 세계적인 선수로 우뚝 선 김연경이 경기 외적인 일로 상처를 받을까 걱정한 팬들로 여론도 들끓었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자격과 FA 규정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될까봐 우려하는 시선이 많았다.

 

김연경은 올해 2월에야 그동안의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년 반 동안을 끌어왔던 선수자격 문제에 대해 국제배구연맹(FIVB)은 김연경의 손을 들어줬다. 자유의 몸이 된 김연경은 홀가분해졌고 코트에서 더 높이 펄펄 날았다.

 

유럽배구연맹(CEV)컵에서 페네르바체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2014-15시즌 종료 후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을 금메달로 이끄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김연경에게는 이번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획득이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그는 "세번째 대회 출전 만에 우승 목표를 이뤘다"고 금메달 획득 당시 감격적인 소감을 전했다.

 

김연경은 아시아경기대회가 끝난 뒤 짧은 휴식을 갖고 페네르바체로 돌아가 터키리그 정규시즌을 치르고 있다. 김연경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흥국생명 시절 이후 일본과 터키에서 아직 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적이 없다. 또한 2012 런던 올림픽의 노메달 아쉬움도 풀어야 한다. 2016 리우올림픽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김연경은 "충분히 올림픽 메달권에 도전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양효진(현대건설) 김희진·박정아(이상 IBK 기업은행) 이재영(흥국생명) 이다영(현대건설) 등 재능있는 후배들이 많기 때문이다. 김연경은 "이미 다른 나라들은 벌써부터 리우올림픽 체제에 들어갔다"며 "우리도 빨리 잘 준비를 한다면 올림픽 메달 획득은 결코 꿈이 아니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조이뉴스24 류한준 기자 hantaeng@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