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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 스포츠선수의 헌정사상 첫 국회 기자회견 | 2014/12/06

정확한 사실 관계를 전달하지 않아 진실을 파악하지 못했던 국제배구연맹(FIVB)의 2012년 10월 10일 공지를 김연경 측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대한배구협회(KVA)가 2012년 9월 14일에 보냈다는 질의에 대한 답변도 받지 못 했고 FIVB의 해당 규정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 한 채 '9.7.서류'만을 근거로 한 공지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흥국생명과 김연경 측은 국제이적 규정에 근거한 결정을 따르기로 합의했었는데, FIVB는 '9.7.서류'를 분쟁이 해결된 것으로 인식하고 그에 따르라고 공지했기 때문이었다. 즉, FIVB는 상위 단체의 판단을 받기 위해 작성된 서류를 판단의 근거로 사용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대한배구협회가 규정대로 국제이적 절차를 진행했더라면 애초부터 생길 이유가 없었던 분쟁이 해결되지 않고 흥국생명이라는 대기업을 상대로 진실을 밝히고 선수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김연경 측은 많은 어려움을 감수해야 했다. '개인 또는 사회적 약자가 조직 또는 사회적 강자를 이길 수 없다'는 상식을 깨야하는 처지에 서게 된 것이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당시 중재를 도와주던 여러 관계자 중 어떤 이들은 에이전트에게 이 싸움을 졌다면 사업을 접고 외국으로 이민가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9.7. 서류'만 없다면 김연경은 국제이적 시 자유계약 선수 맞다!

 

당시 '2012 세계 여자 배구 클럽 챔피언쉽'이 열리던 카타르 도하에서 페네르바체 구단 관계자와 김연경 측은 국제배구연맹의 국제이적 담당자와 두 차례의 미팅을 갖고 단서조항(지난 편 참고)에서 보듯이 질문을 하기로 합의한 '9.7. 서류'가 '10월 10일 공지'의 판단 근거로 사용됐음을 직접 듣고 알게 된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2012년 10월 12일) 중 일부

 

진행자 김현정 - 그러니까 여기 상황이 너무 복잡하니까 일단 잠정적으로라도 뭔가 마무리 짓기 위해서 가합의를 해 놓고, 세계배구연맹의 유권해석이 나오면 이게 뒤집힐 거라고 생각을 하셨던 거군요, 김연경 선수는?

 

김연경 - 그렇죠. 룰로만 따졌을 때는 제가 이기는 게 맞거든요. FIVB(국제배구연맹)에도 오늘 얘기를 했었는데, "만약에 룰로만 따졌을 때, 국제에서는 김연경 선수가 프리인 게 맞다" 그런데 그 합의서를 본 뒤에는 "김연경 선수가 거기에 사인을 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이 선수가 인정을 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임대이지 않느냐" 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거고요.

 

▶소중한 팬(Fan)과 정치의 역할

 

이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때, 사무실로 최민희 국회의원실에서 전화가 왔다. 수많은 팬들의 댓글과 요청으로 김연경 선수의 국제이적 분쟁의 원인과 사건의 정황을 자세히 듣고 억울한 부분을 해결하고 선수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최민희 의원실은 노웅래 국회의원실과 협력하여 큰 도움을 주셨고 최재천 국회의원도 국정감사에서 강하게 어필을 했다).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던 김연경 측에게는 진실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당시 흥국생명 편에 섰던 이들은 '정치가 스포츠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인 주장을 했다. 물론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정상적인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는 스포츠에 정치가 개입하게 되면 스포츠 본연의 의미가 퇴색된다.

 

그러나 선수는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라 인간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그 어떤 가치보다 우위에 있음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상식이다. 그런데 '갑'이 규정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이득만을 취하려고 '을'을 압박하고 그들의 힘을 이용해 상위 단체마저 마음대로 움직인다면 이것을 본 정치가는 모른 척해야 하는가, 아니면 규정대로 법대로 일이 진행되도록 '을'을 도와야 하는가. 억울한 상황에 놓이게 된 국민의 한 사람을 돕는 행위는 정치가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의무요 역할인 것이다.

 

▶약속 지킨 김연경 측과 유관단체 회의 결과

 

여러 국회의원의 노력으로 국회에서 기자회견(2012년 10월 19일)을 하고 국정감사에서 이 사안이 다뤄졌다. 그 결과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그 해 10월 22일 유관 단체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소모적인 논쟁을 피해야한다는 이유로 대한배구협회의 중재 담당자는 분쟁 당사자 즉, 흥국생명과 김연경 측에게 참가하지 말라고 요청했고, 같이 참석하거나 같이 불참하는 데 양자가 모두 동의하고 김연경 측은 약속을 지켜 나가지 않았고 흥국생명 측은 약속을 어기고 단장이 참석했다. 그런데 중재 담당자는 김연경 측에게 회의 시작 바로 전에 흥국생명 단장이 참석한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역시 그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유관단체회의

 

 

이 회의 결과는 발등에 떨어진 불은 껐지만 분쟁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간과함으로써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당사자인 김연경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고 국제 이적과 관련된 근거 규정이 전혀 제시되지 않은 미봉책을 통보하는 형태로 서둘러 위기를 모면한 모양새다.

 

결국 2013년 1월 21일(유관단체 회의에서 통보한 만기일)까지 어떠한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는 관련 규정에 근거를 두지 못한 일방적인 통보였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소통을 위한 기자회견

 

작년 7월 5일 김연경 측은 분쟁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대한배구협회에 8개 항목으로 구성된 질의서를 보냈다. 그 후 답변을 기다리던 중 관계자들로부터 대한배구협회가 답변을 할 이유가 없고 답변을 하지 않을 예정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분쟁 당사자가 이 분쟁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질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답변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최소한의 소통마저 거부하는 행위였기에 김연경 측은 7월 15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게 된다. [2013년 7월 5일 KVA에 보낸 질의서 전문은 인스포코리아 홈페이지(www.inspokorea.com > 공지사항 > 2013.7.5 대한배구협회 질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지 않는다고 전달하는 순간부터 많은 불만이 쏟아졌고 기자회견이 끝난 후 심지어 에이전트에게 욕설을 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기자회견이라고 말해 놓고 질문을 받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그렇지만 질문을 받는다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에 에이전트는 모든 것을 감수하더라도 선수를 보호해야 했다.

 

결국 김연경 측은 최소한의 소통마저도 이루어지지 않는 극한 상황에서 김연경 측이 정한 기일 내에 KVA가 답변을 하지 않는다면 국가대표를 은퇴할 것이라고 초강수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당시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시던 안민석 국회의원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때 공정성과 객관성을 갖춘 언론이라면 국가대표 은퇴를 언급한 것이 나쁘다고 말하기 전에 부상도 참고 항상 국가대표를 위해 헌신했던 김연경이 왜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진지하게 공감하며 면밀하게 사실관계와 정황을 살펴보고 정확한 진실을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스포츠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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