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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적 스케줄' 김연경, 또 뛰어라? 배구협회 '혹사' 논란 | 2017/08/08

대표팀 감독 '김연경 제외' 보고에도... 핵심 관계자 "그랜드챔피언스컵 출전해 달라" 제안

 

 

배구협회 핵심 인사가 국가대표 주전 선수 혹사 문제를 공개 비판하던 김연경(30세·192cm)에게 '국제대회 추가 출전'을 직접 종용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김연경은 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여자배구 아시아선수권 대회가 열리는 필리핀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대한민국배구협회(아래 배구협회)를 향해 맹비판을 가했다. 비판의 핵심은 ▲ 국가대표 주전 선수 혹사 ▲ 부실 지원 ▲ 도쿄 올림픽 체계적 준비 실종 등이었다.

 

대표팀 주장이기도 한 김연경은 그동안 참아 왔던 속내를 작심하고 털어놨다. 이날 김연경의 배구협회 공개 비판은 사실상 초유의 일이다. 국가대표 선수가 언론에 공개적으로 대표팀 부실 지원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경화 배구협회 여자 경기력향상이사는 김연경이 기자들과 인터뷰를 끝내자 따로 불러내 대화했다. 그 자리에서 유 이사는 김연경에게 오는 9월 5일부터 일본에서 열리는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대회에 출전해줄 것을 요청했다.

 

문제는 이날 아침 공항에 가기에 앞서 홍성진 여자배구 국가대표 감독이 유 이사에게 '김연경은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처음부터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보고까지 했다는 점. 유 이사가 공항 출국장에서 다시 한 번 김연경에게 출전을 설득한 것이기에, '혹사 논란'이 예상된다.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은 일본이 4년마다 개최하는 국제대회로 세계랭킹 점수도 주어지지 않는 이벤트성 대회이다. 주최국 입장에서는 흥행을 위해 세계 최고 선수인 김연경의 출전을 당연히 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국 배구협회가 그런 요구를 맞춰 주기 위해 김연경을 혹사시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감독의 '김연경 제외' 보고에도 공항서 '출전' 설득

 

유경화 이사는 지난 7월 26일 오한남 신임 회장 체제의 집행부가 출범하면서 여자 경기력향상이사로 임명됐다. 여자 경기력향이사는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선수 선발과 관리를 총괄하는 핵심 요직이다.

 

유 이사는 이날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오한남 회장을 대신해서 여자배구 대표팀 출국을 격려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찾았다. 그리고 출국 직전에 김연경과 개별 면담을 한 것이다.

 

김연경과의 대화 내용에 대해 유 이사는 7일 저녁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7일 아침에 홍성진 감독에게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출전에 대해) 김연경이 설득이 안 됩니까' 하고 물었더니, 홍 감독이 '김연경은 처음부터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는 출전을 안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래서 내가 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김연경에게 네가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한 번 나가서, 풀로 뛰지는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상징이니까 좀 어렵고 고생스럽겠지만 (경기에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선수를 했기 때문에 너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출전해줬으면 좋겠다고 설득해봤다"고 말했다.

 

유 이사는 "일본이 한국을 초청했을 때는 솔직히 김연경 선수의 효과를 보고 초청했을 거 같다"며 "그래서 지금 한창 배구가 인기가 있으니 김연경이 좀 나가서 여자배구의 인기를 조금 더 올려줬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에 의견을 타진해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이사는 김연경의 반응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연경이가 일단 생각을 해보겠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유경화 이사 "의사 타진일뿐, 협회 차원 압력 아니다"

 

기자는 유경화 이사가 김연경 선수에게 그런 발언을 한 취지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질문을 했다.

 

"일본 배구협회에서 한국을 초청했을 때는 김연경 효과를 보고 했을 것이라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는 얘기다. 그런데 김연경 선수는 유경화 이사도 잘 아시다시피 올해 국제대회를 줄줄이 치르고 있고, 일정도 빡빡해서 현재 혹사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심하게 혹사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대회는 세계랭킹 포인트도 안 주어지고 일본 배구가 흥행 차원에서 하는 이벤트성 대회인데, 굳이 김연경 선수를 국가대표에 계속 차출해서 혹사를 시켜버리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하는 지적이 있다. 그런 것 때문에 배구팬과 네티즌들이 배구협회를 비판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자 유 이사는 "김연경 선수는 배구협회나 한국 배구 차원에서 당연히 보호해줘야 할 선수라는 건 누구나 다 안다"며 "그래서 (김연경에게)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출전하면 더 좋겠다고 의사를 타진한 것이지, 협회 측에서 압력을 넣어서 꼭 데리고 가겠다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었다. 기자는 재차 질의했다.

 

"유경화 이사는 그런 뜻으로 말을 했겠지만, 그 말을 받아들이는 선수 입장에서는 그것이 압력이라고까지는 안 해도 굉장히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배구협회가 대승적 차원에서 아예 제외시켜 주든지 해야 하는데, 계속 이런저런 이유를 제시하면서 모든 국제대회에 다 나가라고 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사실은 김연경 선수에게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출전하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물어본 자체가 썩 바람직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있는 김연경 선수 본인의 의사는 굳이 묻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상황 아닌가. 그런데 국가대표 선발·관리를 총 책임지고 있는 경기력향상이사가 직접 출전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의견을 물어보면 김연경 선수가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면전에서 '나 못 가겠다'는 얘기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유 이사는 "제 생각은 김연경 선수가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가서 경기에 뛰지는 않더라도 어린 선수들도 다독거리고, 또 김연경 선수가 있으므로 해서 다른 선수들이 의지도 되고 하니까 다른 선수들도 거기에 힘을 얻지 않겠는가"라고 답변했다.

 

"김연경에게 너무 큰 부담"... 유 이사 "꼭 데려가려는 의도 아녔다"

 

기자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유 이사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연경 같은 경우는 지금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에서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데리고 가는 자체가 혹사인 것 같다. 일단 가기로 결정되면, 또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고, 가서 편하게 쉴 수도 없다. 연습은 연습대로 해야 되고, 김연경 선수의 강한 책임감으로 볼 때 일부 경기들은 자기가 직접 뛰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선수는 모든 경기에 앞서 잘 준비해서 최선을 다해 뛰어야지,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가서 설렁설렁 경기를 하게 되면 오히려 부상 위험이 더 크다. 때문에 유 이사가 그런 생각이라면, 김연경을 아예 데리고 가지 않는 게 더 맞는 것 아닌가. 또한, 유 이사의 말대로 김연경이 어린 선수들에게 힘이 될 수도 있겠지만, 왜 김연경 선수가 모든 국제대회마다 가서 그 역할을 다 해야 하는 것인가. 배구협회가 김연경에게 너무 큰 부담을 지우는 것 아닌가."

 

그러자 유 이사는 "그렇게 말씀하시면 내가 할 말이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김연경을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꼭 데리고 가야 되겠다는 그런 의도는 아니다"라며 "내가 국가대표 선발 책임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김연경에게 의사를 물어본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챔 출전 명단' 초안... 김연경만 빼고, 다른 선수들 그대로?

 

한편, 유경화 이사는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출전할 대표팀 선수 명단 초안도 이미 정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초안에는 김연경이 안 들어 있다"면서 "대신 양효진, 김희진, 박정아 등 현재 주전 멤버들은 그대로 있고, 거기에 이재영이 추가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종 엔트리는 홍성진 감독이 아시아선수권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면 다시 상의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이사는 "그런 상황에서 김연경 선수의 출전 의사를 다시 한번 타진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에서 얘기를 나눠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초안 대로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대표팀 엔트리가 최종 결정될 경우, 또 다른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김연경 선수를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대회에서 제외하는 것은 여러모로 당연하고 적절한 조치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양효진·김희진·박정아 등 기존 주전 선수들이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출전해도 상관없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선수들도 올해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국제대회에 풀로 출전하면서 혹사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선수 개인적으로도 크고 작은 부상을 안고 있어 몸 상태도 좋지 않다.

 

양효진·김희진·박정아는 혹사해도 되나... 김연경도 '부담'

 

올해 한국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의 일정을 살펴보면, 그 심각성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여자배구 대표팀의 주전 선수들은 올해 6월 3일 한국배구연맹(KOVO)이 주최한 '한국-태국 여자배구 올스타 슈퍼매치' 출전을 시작으로 살인적인 국제대회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대표팀은 지난 월드그랑프리 대회에서 7월 7일부터 31일까지 4주 동안 일주일 간격으로 불가리아-폴란드-한국-체코를 오가는 강행군을 펼쳤다. 시차 적응도 되지 않은 채 매주 3일 연속 경기를 치렀다. 비몽사몽 간에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오는 9일부터 필리핀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 대회는 월드그랑프리보다 더욱 빡빡하다. 한국 대표팀은 9일부터 11일까지 3일 연속 경기를 치러야 한다. 그리고 12일 하루 쉬고, 다시 13일부터 17일까지 무려 5일 연속해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

 

불과 보름여 만인 9월 5일부터는 일본에서 열리는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출전해야 한다. 이 대회에서는 9월 5일부터 6일까지 2일 연속, 다시 8일부터 10일까지 3일 연속 경기를 펼쳐야 한다. 상대할 팀도 중국, 브라질, 미국, 러시아, 일본으로 세계 최정상급 팀들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10일 만인 9월 20일부터 24일까지 태국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아시아 지역 예선전에도 출전해야 한다. 이 대회는 올해 가장 중요한 국제대회로 도쿄 올림픽 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국제대회 중간중간 국가대표 소집 훈련까지 감안하면, 가히 살인적인 일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데다 월드그랑프리 대회에서 김연경을 비롯한 주전 선수들이 거의 전 경기를 뛰다시피 했다.

 

설상가상으로 배구협회마저 대표팀을 도와주기는커녕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배구협회는 여자배구 월드그랑프리 대표팀 엔트리를 다른 나라보다 2명이 적은 12명만으로 운영했다. 여자배구 대표팀에게 절반은 비즈니스석, 절반은 이코노미석을 타고 가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비난을 자초했다(관련 기사 : "남자는 전원, 여자는 절반만" 여자 배구대표팀의 '서러운' 원정길). 그 와중에 오 회장은 강남 고급 호텔에서 취임식을 열어 기름을 부었다.

 

그런데 또다시 이번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도 다른 나라보다 적은 13명만으로 대표팀 엔트리를 구성해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 남녀 배구가 세계 강팀들의 행보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장신 유망주 발굴·육성 외면과 국가대표 주전급 선수 혹사 논란이 대표적이다.

 

세계 배구 강국들은 월드그랑프리 대회 등에서 보듯, 이미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권과 메달 획득을 목표로 철저하게 주전 선수 휴식과 유망주 발굴에 초점을 맞춰 대표팀을 구성하고 운영했다. 그러나 한국 여자배구는 리우 올림픽 주전 멤버를 거의 그대로 풀가동하고 있다. 나이 어린 장신 유망주는 전무했다.

 

결국 참다못한 김연경이 7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언론 기자들에게 이 같은 문제점들에 대해 신랄하게 공개 비판을 하고 나섰다(관련 기사 : 결국 '폭발한' 김연경, 진짜 문제는 배구협회다).  

 

이 난리통에 '배구협회 회장은 부재중'

 

그런 상황에서 김연경 선수가 본인 혼자만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대표팀에서 빠졌을 때, 남은 선수들에게 어떤 심정을 가질지는 불문가지다. 마음이 편할 리 만무하다.

 

기자는 유경화 이사에게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같은 대회에는 유망주들을 많이 뽑아서 데리고 가는 것도 방법 아닌가"라고 물었다.

 

유 이사는 "한국도 세대교체를 해야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올해까지는 (일정이) 이미 다 정해졌고, 이제 두 국제대회가 남아 있는데 당장 낼모레 시합이고 엔트리도 다 올라가 있다"며 "여기에서 신인들로 확 바꾸고 선수 교체를 하는 것은 무리"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이렇게 마무리를 잘하고, 그리고 나서 계획을 세워서 내년부터 신인으로 많이 교체하는 구상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배구협회가 결단을 내려야 할 일이다. 그런 걸 하라고 존재하는 게 배구협회이기 때문이다. 일본 배구의 흥행을 위해 한국 국가대표 주전 선수들을 계속 혹사시킬 것인지, 과감하게 그동안 휴식을 가진 프로 선수나 나이 어린 장신 유망주들에게 기회의 장을 열어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결단을 내려야 할 배구협회 최고 책임자는 현재 국내에 없다. 오한남 배구협회 회장은 지난 7월 25일 취임식을 한 지 10일 만에 개인 사업차 해외로 떠났다. 오 회장은 대학배구연맹 회장을 역임할 당시에도 1년에 거의 2/3는 해외에 나가 있었다.

 

최근 연이어 터져 나오는 사태들과 관련해 수습책을 묻기 위해 배구협회 고위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하면, 한결같이 들어야 하는 답변이 있다. "제가 임명된 지 며칠밖에 안 돼서"였다. 보름도 안 된 신임 임원들만 이 난리통을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배구협회 지도부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경우도 있다.

 

 

오마이뉴스

글=김영국 기자, 사진=박진철 기자, 편집=김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