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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랭킹 1위 배구 여제 김연경 "걸크러시의 핵심은 실력" | 2017/12/09

'걸크러시'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 시원시원한 성격에 세계 배구선수 랭킹 1위라는 실력까지 갖춘 김연경 선수다. 최근 자전적 에세이집을 출간하고, 중국 리그로 옮겨 팀을 연승으로 이끌고 있는 그녀를 이메일로 만났다.

 

배구 여제 김연경(29세·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 걸크러시 대명사로 수많은 여성팬을 거느리고 있는 그녀가 최근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여성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여자 핸드볼팀과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한 여자축구대표팀이 이 상을 받은 적이 있지만 여성 체육인 혼자 수상한 것은 김연경이 처음이다.

 

"더 대단하고 훌륭한 분들이 계신데도 불구하고 이 상을 받았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요. 그리고 여성으로서뿐 아니라 이상을 가지고 실현해가는 한 사람으로서 틀린 길을 걷지 않았다는 응원으로 들려서 감사하고 자랑스러워요."

 

그녀는 걸크러시의 핵심은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꿈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여자라서 안 되고 여자라서 못할 거라는 편견들에 부딪힐 수 있잖아요. 그럼에도 장애물을 뛰어넘고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 오히려 그 편견들이 그동안의 여정을 더 빛나게 해주는 효과를 발휘해요. 무언가 바꾸고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는 데에도 힘이 생기죠. 늘 최선을 다해 이 길을 걸어왔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거니까요."

 

세계랭킹 1위 실력 입증

중국에서도 연승 행진

 

김연경은 2008~09 시즌까지 흥국생명 소속으로 정규 시즌 MVP 3회, 챔피언결정전 MVP 3회를 수상하며 한국 배구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2009년 일본 JT 마블러스에 입단해 9위에 머물던 팀을 단번에 우승으로 이끌었고, 2011년에는 터키 페네르바체로 소속을 옮겨 통산 5번의 우승을 이끌어냈다. 명실공이 세계 최고 자리에 오른 그녀가 최근 중국 리그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국제배구연맹 여자 배구에서 세계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는 중국이지만 김연경이 이적한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는 17년 동안 우승을 하지 못해 부진이 길어지고 있는 팀이었다. 김연경을 영입하고는 6연승 행진(11월 20일 기준)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 여러 구단에서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을,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최근 중국이 세계랭킹 1위인 만큼 배구가 많이 성장하고 있어요. 같은 아시아 선수로서 왜 그렇게 잘하는지 궁금하고 경험해보고 싶었죠. 리그 기간도 유럽에 비해 짧아서 대표팀 들어가기 전에 조금이나마 쉴 수 있는 환경이 될 거란 생각에 결정했습니다.

 

중국에 가자마자 명불허전 최고 실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적응이 빠른 비결은 뭔가요? 워낙 예전부터 알고 지내면서 교류하는 중국 선수들이 많았어요. 팀 선수들도 너무 잘해주고요. 지금까지 제 커리어를 존중해주고 많이 믿고 따라와주고요. 참 고마워요.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 모두 배려해주고 잘 챙겨주셔서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배구선수로서는 중국 역대 최고 대우를 받았다고 알려졌습니다. 시샘하거나 텃세하는 경우는 없나요? 저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항상 언론이나 에이전트로부터 세계 여자 배구선수 중에서 최고 대우를 받는다고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중국에서 역대 최고 대우를 받는다고 해도 어느 누구도 시샘하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아요.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도쿄올림픽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또 대표팀 전체적으로 보완하고 싶은 점이나 개선하고 싶은 부분을 꼽는다면요? 현재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제 목표예요. 내년 아시안 게임도 남아있고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도 도전 과제죠. 아직 시간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여러 선수들을 테스트하고 기용해서 최고 팀으로 올림픽에 출전했으면 좋겠어요. 배구에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 선수들이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많은 부분 지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환점이 필요한 서른

"아직 끝이 아니다"

 

김연경 선수는 지난 가을 첫 에세이 <아직 끝이 아니다>(도서출판 가연)를 펴냈다. 일반적으로 대중은 김연경의 성공한 모습만 알고 있지만 그녀도 대타 선수로 벤치를 지키던 유년시절이 있었다. 책은 그녀가 어떻게 오랜 시간 고된 훈련을 버티며 기본기를 쌓아 '배구 여제'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 그녀의 배구 인생을 따라가본다. 그녀의 글에서는 한 가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몰두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과 확신이 느껴졌다.

 

먼저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출판사에서 제의를 받았어요.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시기가 좋다고 생각했죠. 저 자신에 대한 책을 쓴다는 자체가 너무 좋았고 마침 이런 기회가 주어져서 감사해요. 많은 분에게 제 배구 인생을 알려드리고 싶었거든요.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뭔가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떤 힘든 순간에도 긍정적인 김연경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힘들지만 꿈을 위해 끝까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점, 긍정적인 힘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를 시작한 후, 배구가 전부인 인생을 살았다. 사진은 김연경 선수의 어린시절. 책 뒤표지 추천사를 보면 김연경 선수의 인성을 칭찬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부모님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요. 성장 과정에서 성격이 형성되는 데 가족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많은 분이 저를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해요. 아무래도 부모님의 영향으로 긍정적이고 쾌활한 성격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든 일에서 가족이 많이 도와주고 힘이 되어주고 있어요. 훈련하고 숙소 생활을 하느라 배구를 시작한 이후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함께 살지 않았어도 늘 제게 마음을 두는 가족 덕분에 아무리 힘든 훈련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족에게 돌아가더라도 아무 말 없이 받아주고 안아줄 거라는 걸 알고 있거든요.

 

막내딸이 배구 하는 걸 가족들은 반대했다고요.

큰언니가 배구를 했고, 고생하는 걸 보셨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배구를 하겠다는 말을 꺼낸 이후로 하루도 쉬지 않고 매달렸어요. 결국 엄마가 저를 불러 앉히고는 물어보셨죠. 시작하고나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할 자신이 있냐고요. 사실 저희 부모님은 세 자매가 원하는 것, 특히 배움이나 경험에 관한 거라면 묵묵히 지원하고 응원해주셨거든요. 어릴 때부터 수업을 충실하게 듣고 숙제를 모두 하고나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나면 자유롭다는 게 저희 집 규칙이었죠. 덕분에 뛰어노는 것을 좋아해 공을 차다가 운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게 배구로 이어졌어요. 결국 남보다 빨리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을 수 있게 도와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는 키도 작았고 늘 후보 선수였는데, 고2 때 갑자기 키가 확 자랐다고요.

키가 클 수 있는 방법은 모두 해본 것 같아요. 한의원에 가서 키 크는 약을 지어 먹기도 하고 티브이 프로그램이나 기사에 키 크는 법, 키 크는 음식이 나오면 모두 해보고, 먹어봤죠. 그 정도로 엄마가 많이 신경 써주셨고 저도 노력을 했어요. 가족 모두 키가 크기도 하거든요. 유전적인 영향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노력 또한 무시 못 하겠죠?(웃음)

 

유명해진 이후 들어가는 팀마다 승리 팀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김연경 선수의 성공한 모습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실패나 좌절의 기억이 있나요? 어떤 방법으로 극복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실패라기보다 좌절한 순간은 엄청 많죠. 운동선수에게는 매 순간이 좌절 아니면 환호거든요. 특히 시즌 중에는 일주일에 1~2번씩 계속 경기가 있어서 매 순간이 도전이에요. 늘 상대와 싸워야 하니, 지는 팀은 좌절하고 이긴 팀은 환호하죠. 이 순간순간을 항상 반복해요. 그래서 좌절할 때면 빨리 잊으려고 노력해요. 잠시 다른 좋아하는 것들을 하는 거죠. 영화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거나 음악 듣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최대한 스트레스를 풀어요. 그리고 다음을 생각합니다.

 

서른의 한 해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전환점이 필요한 시기였다고요.

최근 몇 년 동안 올림픽을 포함해 여러 국제대회 경기 일정으로 비시즌 동안에도 충분한 휴식을 갖지 못했어요. 하지만 올림픽 메달이라는 목표가 남아있거든요. 2020 도쿄올림픽이 저에게는 국가대표팀으로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한국과 거리도 가깝고 리그 일정도 국내와 비슷해서 대표팀 일정을 소화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 같아 중국 리그를 택했죠. 하지만 단지 휴식, 대표팀 합류 때문에 중국을 선택한 건 아니에요. 도전과 다양한 경험을 즐기거든요. 새로운 목표를 향해 가고 싶었어요.

 

배구 인생의 2막

"코트 위 시간 끝나도 배구 위해 살고 싶어"

 

그녀의 말대로 어쩌면 도쿄올림픽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가끔 배구선수가 아닌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는 부상 위험이 있어서 즐기지 못하던 스키와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세계 여행도 떠나고 싶단다.

 

은퇴 후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있나요?

배구 인생의 2막을 열어가고 싶은 꿈이 있어요.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이제까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유소년 배구를 발전시키는 거죠. 오래전부터 관심이 많아서 아이디어와 계획들이 있는데 은퇴 이후에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도는 선수로서 활동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에 이론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을 가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아직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지만 어릴 때부터 배구밖에 몰랐고, 지금도 코트 위에서 뛰는 시간이 가장 소중하거든요. 코트에 서는 시간이 끝나더라도 배구를 위해 살고 싶어요.

 

연애나 결혼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죠?

올해 서른이 되고서 결혼하는 친구도 늘었고, 질문도 늘었어요. 그런데 저는 언제 결혼할 거냐는 말을 들으면 억울한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왜냐면 현역으로 최대한 오랫동안 활동하고 싶거든요. 선수일 때는 배구에 집중하고 싶어요. 그렇다고 은퇴 후 쉴 틈도 없이 바로 결혼한다고 생각하면 부모로서 책임을 갖고 아이 키울 생각에 상상만으로도 힘들어서 그간 고생이 억울하게 느껴져요. 최고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이 필요했으니까요. 은퇴하는 날이 온다면 최선을 다한 나 자신에게 또 다른 책임이 아니라 자유를 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배구 선수로서 할 일을 마치고 나로서 살아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죠. 그러면 사랑할 것이고, 가정을 꾸리고 싶으면 가정을 이룰 거예요. 정해진 건 없어요.

 

 

여성조선 황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