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전설’ 장윤희 “김연경은 배구 성장 8할 책임지는 월클이죠” | 2020/12/01
-여자 배구 전설 장윤희 “김연경은 역대 어떤 선수와도 비교할 수 없다”
-“1990년대 여자 배구? 장충체육관이 매 경기 함성으로 가득했죠”
-“김연경,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얼마만큼 땀 흘렸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김연경 효과? 국제대회 성적은 물론 프로배구 선수 꿈꾸는 유망주까지 늘었다”
김연경 이전에 장윤희가 있었다.
호남정유의 92연승을 이끌었던 장윤희는 대통령배-슈퍼리그 시절 MVP 5회 수상, 베스트6 10회 수상에 빛나는 여자배구의 전설 중의 전설이었다. 국제대회에서도 장윤희는 원조 '월드 스타'였다.
한국 여자배구가 1994년 브라질 세계선수권 대회 4위, 1994년 일본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1997년 월드그랑프리 3위, 1994년 월드컵 4위 등의 뛰어난 성적을 낼 때에도 그 중심엔 항상 장윤희가 있었다.
그런 전설이 속사포처럼 칭찬을 쏟아내는 '예비 전설'이 있다. 바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김연경이다.
“(김)연경이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는 선수예요. 코트 안에선 눈을 뗄 수 없는 플레이로 마음을 사로잡고, 코트 밖에선 팬 한 명 한 명에게 감동을 선물하는 선수죠.” 장윤희의 김연경 예찬이다.
- 장윤희 “터키에서 세계 최고 선수로 우뚝 선 김연경,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얼마만큼 노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1990년대 배구는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다. 한국배구 슈퍼리그(1984~2004년)가 열린 장충체육관은 경기마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당시 최고 스타로 명성을 떨친 장윤희 배구 해설위원은 그때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현장 열기가 지금 못지않았어요. 경기 중엔 관중 함성으로 선수들과 소통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정도였어요. 지금처럼 미디어 노출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 활동이 활발했다면 더 큰 관심을 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당시엔 팬 서비스에 대한 개념이 없었어요. 선수는 운동만 해야 했어요. 팬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한 게 지금도 후회되네요.”
여자배구는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10개나 됐던 여자 실업팀이 절반으로 줄었다. 겨울이면 장충체육관을 찾던 팬들도 하나둘 배구장을 떠났다. 2005년 V-리그 출범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장 위원처럼 배구를 대표할만한 스타가 눈에 띄지 않으면서 ‘그들만의 리그’란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장 위원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 여자 배구가 기사회생한 요인으로 슈퍼스타 김연경의 등장과 2012년 런던 올림픽을 꼽는다.
김연경의 등장은 어두컴컴한 배구계에 한 줄기 빛이었다. 김연경은 2005-2006시즌 여자 프로배구 신인선수 드래프트 1순위로 천안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입단했다. 그리고 데뷔 시즌 6관왕에 올랐다. 득점상, 공격상, 서브상, 신인상, 정규시즌 MVP, 파이널 MVP 등 상이란 상은 모조리 쓸어 담았다.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신인상과 정규시즌 MVP, 파이널 MVP를 모두 받은 건 김연경이 유일하다. 김연경은 V-리그에서 뛴 네 시즌 동안 정규리그 우승 3회, 챔피언 결정전 우승 3회, 통합우승 2연패 등을 이끌었다. 2009년 JT 마블러스(일본·2009~2011)로 둥지를 옮긴 뒤엔 페네르바흐체 SK(터키·2011~2017),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중국·2017, 2018), 엑자시바시 비트라(터키·2018~2020) 등에서 뛰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났다.
장 위원은 “연경이의 터키 시절 중계 때 해설을 맡았다”며 “세계 최고 선수들과 경쟁을 이겨내고 정상에 우뚝 서는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봤다”고 말했다.
“유럽 진출 첫 시즌(2011-2012) 모두의 예상을 깨고 팀의 창단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연경이는 그 시즌 MVP와 득점상을 받았죠. 아시아 선수가 세계 최고로 인정받은 순간입니다. 이후에도 간판스타이자 에이스로 활약을 이어가며 정상에서 내려오질 않았어요.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곳에서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였을지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후배지만 존경할 수밖에 없는 선수예요.” 김연경에 대한 장 위원의 평가다.
- “김연경 앞세운 한국의 국제대회 성과가 여자 배구 부활 알렸다”
김연경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맹활약으로 배구장을 떠난 관중들을 하나둘 불러 모았다. 배구 인기 회복의 속도를 붙인 건 2012년 런던 올림픽이다. 장윤희 해설위원은 그 대회에서 일군 성과가 배구 인기 회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2012년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은 런던 올림픽 4위에 올랐다. 대회 전까지 한국의 4강 진출을 예상한 전문가는 없었다. 장 위원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당시 세계랭킹은 15위였다. 본선 조별리그 B조에서 만날 상대는 미국(1위), 브라질(2위), 중국(3위), 세르비아(7위), 터키(8위)였다. 한국은 올림픽 전 월드컵 여자 배구대회에선 3승 8패로 9위에 머물렀다.
기적을 썼다. 한국은 브라질(3-0), 세르비아(3-1)를 꺾고 조 3위 8강 진출에 성공했다. 미국(1-3), 터키(2-3), 중국(2-3)과 경기에서도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국은 거칠 것이 없었다. 8강전에선 이탈리아를 세트 스코어 3-1로 이기고 준결승에 올랐다. 한국 여자 배구가 올림픽 4강에 오른 건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36년 만이었다.
한국은 준결승전에서 다시 만난 미국에 0-3으로 졌다. 체력이 바닥난 한국은 일본을 상대한 3·4위전에서도 0-3으로 패했다. 하지만, ‘조별리그 통과는 기적’이란 예측을 뛰어넘은 놀라운 성과였다.
장 위원은 “2012년 런던 올림픽 4위는 우승보다 값진 결과물이었다”며 “김연경이 그 중심에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대회 MVP와 득점상을 받은 게 김연경입니다. 김연경은 조별리그와 8강전 6경기에서 평균 27.5점을 기록했어요. 세계 최고 선수라는 걸 올림픽에서도 증명했죠. 더 놀라운 건 팀원들을 다독이면서 전력 상승까지 꾀했다는 겁니다. 한송이, 김희진, 양효진 등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주면서 한국의 준결승 진출에 힘을 더했어요. 대회 전 ‘김연경과 아이들’로 불리던 팀이 하나의 팀으로 똘똘 뭉친 겁니다.”
김연경을 앞세운 한국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이어갔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선 20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선 8강 진출에 성공했다. 201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에선 2연속 금메달 획득엔 실패했지만 3위(동메달)를 차지했다.
“김연경이 한국 여자 배구를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국제대회에서의 꾸준한 성적이 증명해요. 김영경 효과는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김희진, 이다영, 이재영, 강소휘 등 스타 선수가 꾸준히 나오고 있어요. 김연경을 보고 프로배구 선수를 꿈꾸는 학생선수도 확 늘었죠. 슈퍼스타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김연경을 보면서 느낍니다.” 장 위원의 말이다.
- “김연경은 실력뿐 아니라 인성도 월드클래스” -
장윤희 해설위원은 김연경의 숨겨진 성공 비결로 인성을 꼽았다. 월드클래스 기량에 버금가는 인성이 지금의 김연경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장 위원은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했다.
“2017년 대표팀 코치를 맡았을 때 연경이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연경이는 팬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경기에서 이기든 지든 팬 한 명 한 명에게 사인해주고 사진을 찍어줬어요. 숙소 앞에서 기다리는 팬들에게도 마찬가지였죠. 이런 팬 서비스가 배구장의 열기를 뜨겁게 해준다는 걸 느꼈습니다. 연경이는 선·후배도 확실히 챙겨요. 먼저 다가와서 인사하는 선수죠. 코트 안팎에서 흠잡을 데가 없는 세계 최고의 선수예요.”
김연경이 복귀한 흥국생명은 2020-2021시즌 V-리그 여자부 단독 선두에 올라있다. 9전 9승(승점 25점)으로 2위 GS 칼텍스(6승 4패 승점 18점)에 승점 7점 앞서있다. 김연경은 득점 4위(221점), 공격 성공률 1위(47.88), 서브 1위(0.46)에 올라있다.
장 위원은 “김연경은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데 큰 자부심을 느끼는 선수”라며 “한국 복귀는 내년 올림픽을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선수들이 김연경과 경쟁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해요. 흥국생명 선수들은 김연경이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하나하나 지켜볼 수 있습니다. 상대는 김연경의 플레이를 분석하고 경쟁하면서 기량 향상을 꾀할 수 있죠. 올 시즌은 여자 배구가 한 단계 더 성장할 기회입니다.” 장 위원의 생각이다.
장 위원은 '현역 시절 자신과 김연경을 비교하면?' 이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연경이가 훨씬 잘하죠. 연경이는 신체조건부터 남달라요. 192cm입니다. 큰 선수들은 공격의 강점이 뚜렷한 대신 수비를 못 하는 데 그렇지도 않아요. 다 잘합니다. 흠잡을 데가 없어요. 제가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키(170cm)가 작아서 레프트가 아닌 리베로를 맡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연경이처럼 마음껏 공격하기 어려울 거예요.”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엠스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