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인터뷰

“한때 ‘코트의 땅콩’… 그만둘까 했는데 20㎝나 마구 늘어났죠” | 2012/08/22

 

2012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여자배구는 1976 몬트리올올림픽 이후 36년 만에 4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지역 예선 통과도 마음 졸이는 상황이었지만 일본을 3-1로 꺾는 등 의외의 분전으로 본선 티켓을 따낸 후 올림픽에서 러시아, 브라질, 이탈리아를 제치고 준결승까지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한국 여자배구의 예상을 뛰어넘은 성적에는 김연경(24)이 있었다. 김연경은 세계적인 스타들의 경연장이었던 올림픽에서 207점을 몰아쳐 득점왕에 올랐고 대회조직위원회가 선정하는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전 종목을 통틀어 올림픽에서 해당 종목 MVP로 뽑힌 것은 김연경이 처음이다. 지난 시즌 터키 페네르바흐체에서 유럽 MVP에 뽑혔던 김연경은 이제 유럽을 넘어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7일 김연경이 서울 중구 충정로의 문화일보 본사로 찾아왔다. 192㎝. 넓은 코트에서 볼 때보다 훨씬 길다. 신발 신고 192㎝? “아니요, 맨발로 쟀을 때요”라고 말한다. 다리가 유난히 긴데다 스키니 진을 입어 더 길어 보인다.

 

지금은 국내 최장신 여자 배구선수지만 김연경은 작은 키 때문에 배구를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다.

 

“안산 서초교 4년 때 배구공을 만지기 시작했죠. 6살 위인 큰 언니(김혜경)가 배구선수를 해서 하게 된 건데 그때 학교 선수 중 가장 작았어요. 142㎝ 정도. 그래서 포지션이 세터였어요. 다른 선수들은 보통 150㎝ 정도였으니 얼마나 작았는지 아시겠죠. 중학생 때도 세터를 했고 고교(수원 한일전산여고)에 입학해서는 수비 전문인 리베로를 할까 하고 훈련을 받았지요. 지기 싫어하는 성격인데 배구는 무조건 길고 큰 게 유리하잖아요. 그래서 배구를 그만둘까 생각했던 거죠.”

 

‘코트의 땅콩’으로 불리는 리베로를 할 생각이었을 정도로 키가 작았던 김연경은 바로 그점 때문에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오래 세터를 하고 리베로 훈련을 받으면서 배구의 기본 중의 기본인 리시브와 수비 그리고 토스를 확실하게 익혔기 때문이다. 요즘 장신 공격수 중 리시브를 잘 하는 선수는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

 

시련은 감독 선생님의 격려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다.

 

“중학교 은사인 김동열 감독님이, ‘너는 손발이 크니 언젠가는 분명히 키가 클 것이다. 지금은 기본기만 열심히 연습하라’고 하셔서 계속했어요. 근데 경기에는 잘 내보내지 않으시더라고요. 아버지가 175㎝로 평균 이상이고 엄마도 171㎝로 크신 편이에요. 외할아버지가 185㎝, 친할아버지가 180㎝로 큰 편이셔서 나도 언젠간 크겠지 생각했죠. 고교 진학 때 설움을 많이 받았어요. 오라는 팀이 없었으니까요. 동창인 김수지(185㎝·현대건설 센터)가 그때 여고 랭킹 1위였는데 수지한테 묻어서 한일전산여고에 들어갔죠.”

 

여고 1년 때 키가 171㎝로 커졌고 행운까지 따라 드디어 공격수를 하게 된다.

 

“고1 후반기 때 제법 키가 커졌고 마침 주전 공격수인 고3 선배가 다쳐 당시 감독이시던 황명석 선생님이 ‘땜방’으로 레프트에 기용, 경기에 나갈 수 있었죠. 이후 갑자기 키가 컸어요. 컸다는 표현보다는 마구 늘어났다는 게 맞을 정도로요. 180㎝를 넘더니 금방 185㎝, 제가 봐도 신통할 정도였지요. 프로팀에 입단해서도 1㎝가 더 컸어요. 지금 맨발로 192㎝인데 좀 더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올림픽 예선에서나 본선에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예상했나.

 

“솔직히 우리 팀이 그렇게 잘 할 줄 몰랐어요. 제 경우 2008 베이징올림픽 예선에 무릎수술 때문에 나가지 못했잖아요. 미안함도 있고 해서 코트에서 쓰러진다는 각오로 임했죠. 본선 첫판 세계 최강의 하나인 미국과 붙어본 후 ‘할 수 있겠다’ 하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나뿐만 아니라 멤버 전원이 이런 자신감이 붙으니 러시아, 브라질, 이탈리아도 결국 무너지더군요.”

 

―프로배구에서 외국인 선수들을 활용하고 있는데 이 점이 도움이 됐을까? 여자 프로배구에서 토종선수 육성을 위해 용병 제도를 폐지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저는 용병 제도를 100% 찬성합니다. 높이와 파워를 갖춘 용병들의 공을 받으며 적응력을 높일 수 있고 또 수준이 높은 선수가 있어야 우리 선수들도 배우고 목표를 갖게 됩니다. 많은 돈을 들이는 만큼 우리가 뺏을 건 뺏어야죠. 그들 때문에 한국 배구를 알릴 기회도 생기고요. ‘용병 때문에 토종선수 육성이 힘들다’ 하는 건 변명이에요. 지도자도 세계 배구의 흐름을 읽고 그에 맞는 코칭법을 개발해야 합니다.”

 

김연경은 일본과 터키에서 용병으로 활약한 경험이 대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고 한다.

 

“일본 배구의 장점은 확실한 기본기, 상대 분석 그리고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저는 일본에서 기본기를 다시 익히다시피 했어요. 비디오를 보고 상대를 분석하는 노력도 엄청납니다. 상대 선수를 분석해 어떻게 공격 코스를 잡아야 하겠다 하는 전략을 세우는 것도 일본에서 배웠죠. 팀의 경우 장기적인 목표를 잡고 갑니다. 팀에 맞는 선수를 고르고 팀 컬러에 맞춰 훈련을 합니다. 3~4년 후에 우승하겠다는, 이런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팀을 꾸려갑니다. 한국은 너무 성적에만 연연하죠. 그러니 기본기보다는 당장의 성적에만 급급해하다 보니 체계가 사라진 것이죠. 터키로 옮겨 유럽무대에서 뛰면서 신장이 좋은 선수들을 상대하며 블로킹을 피해 공격하는 법을 배웠지요. 일본에서 기본기를 다시 배우고 유럽에서 성숙해졌다고 할까요. 이제는 가끔씩 컨디션이 좋을 때는 상대 코트의 빈 곳이 보일 정도로 배구를 보는 눈이 생겼어요.”

 

―터키에서 꽤 고생했다고 들었는데.

 

“외로움 때문이죠. 한국같이 용병에게 잘 해주는 나라는 없어요. 혼자 요리해서 밥 먹고 빨래하고 혼자 쇼핑하고. 매니지먼트 회사와 계약한 것도 그런 외로움 때문이었어요. 지금은 많이 적응했어요. 제가 적응력이 좋거든요. 터키에서는 쇠고기를 으깨 경단처럼 만든, 미트볼 같은 ‘겹대’라는 음식을 잘 먹었죠.”

 

―올림픽 다녀온 후 달라진 점은.

 

“몇 년간 외국에 진출한 사이 중계가 없어서인지 알아보시는 분이 좀 없으셨거든요. 올림픽 이후 ‘대박’이죠. 팬클럽 회원이 20배는 늘었고 길에서 보면 다들 ‘잘 했다’ ‘수고했다’고 알은체 해 주세요.”

 

―그 정도면 CF 섭외도 많이 들어오지 않을까? 어느 분야가 맞을지.

 

“아직 들어온 데는 없는데…. 우유 먹고 키가 엄청 컸으니까 우유 광고? 아! 라면도 좋겠다. 터키에 있을 때 선후배들이 라면을 무지 보내줘서 하루 한 번은 꼭 먹었으니까. 드라이브를 즐기니 자동차 광고도 좋고 ㅋㅋ.”

 

―다른 종목 선수들, 연예계 스타들과 친분이 많은데.

 

“프로골퍼 최나연과는 절친이죠. 5~6년 전 JDI라는 스포츠클리닉에서 운동을 같이하다 알게 됐는데 나연이 아버지께서 ‘동갑이니까 친구하라’고 해서 아주 친해졌어요. 올림픽 기간 중 에비앙마스터스 출전 차 왔다가 런던에 들러 응원도 했어요. 박찬호 아저씨는 일본에 있을 때 내가 응원가서 같이 식사도 하고. 아이돌 스타로는 김재중 말을 많이 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터키에 오셔서 국빈 만찬을 하시는데 초대돼 만나 같이 사진만 찍었고…. 올림픽 후 방송 출연했다가 샤이니 종현과 친해졌어요. 원래 이상형은 탤런트 조인성 씨예요. 언젠가는 조인성 씨와 밥 한번 먹는 게 소원입니다.”

 

김연경은 방송 출연에 여러 매체의 인터뷰에,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내고 있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원 소속팀 흥국생명과 갈등 관계에 있다. 국내 프로배구가 선수와 매니지먼트사와의 계약을 인정하지 않아 불거진 일이다. 지난달 터키 페네르바흐체와 계약했지만 흥국생명에서는 7월2일자로 그를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 자칫하면 소송까지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연경은 “어차피 흥국생명은 내가 돌아올 팀이니만큼 이번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인터뷰 = 이동윤 선임기자(체육부) dylee@munhwa.com